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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뿐이 아닙니다." 나는 말을 이었다. "아시다시피 저는 대단히 감각적인 사람입니다. 모든 것이 제 상상력 속에 뿌리를 내리고 거기서 자양분을 받습니다. 한창 예민하고 장난기에 가득한 시절, 그 때 아마 한 열 살쯤이었을 겁니다. 우연히 <순교자들의 일생>을 읽었는데 저는 순교자들이 그 끔찍한 고문을 의연히 견뎌내는 모습, 감옥에 갇혀 고생하고, 화살에 찔리고, 끓는 물에 던져지고, 사자에게 던져지거나, 십자가에 못박히는 그 무서운 장면들을 머리 속에 그리며 두려움과 함께 미묘하고도 강렬한 쾌감을 느꼈습니다. 그 이후로 끔찍한 고통을 견디는 것이 가장 숭고한 즐거움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아름다운 여성에 의해 고통 받을 때 더욱 그렇습니다. 제게 있어서 여성이란 시적인 아름다움과 악마와 같은 잔인함이 공존하는 존재이니까요. 저는 이러한 생각을 개인적으로 종교의 차원으로까지 승화시켰습니다. 감각이란 신성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신성한 원리입니다. 아름다운 여성 또한 신성한 존재입니다. 종족의 유지라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니까요. 여성은 바로 인격화된 자연의 모습입니다. 여성은 이시스 여신이고 남성은 그 여신을 받드는 사제이며 노예입니다. 필요에 따라 이용하고, 필요가 없으면 가차없이 인간을 내던져버리는 자연과 같이 여성은 남성에게 잔인하게 대합니다. 남성에게 있어서, 여성에게 학대받고 나아가 여성의 손에 죽음을 당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입니다.
(레오폴트 폰 자허-마조흐, 모피를 입은 비너스 206)
2.
"당신은 지금 제 정신이 아니에요."
"그럴지도 모르죠. 어쨌든 더 들어보세요."
(207)
T.
#마조히스트의논리 #모피를입은비너스 #레오폴트폰자허마조흐 #들뢰즈의매저키즘
1.
<모피를 입은 비너스>에서 유래된 매저키즘은 우리가 대충 짐작하는 매저키즘과는 완전 다르다. 소설을 읽어보면 인간에 대해, 사랑에 대해, 소유에 대해 등등등 깊게 생각치 못했던 사유의 영역을 밝혀준다. 조선시대 태평성대를 꿈꾸던 '정의로운' 양반들도 반상의 차별이 없는 세상은 꿈에서 조차 상상하지 못한다.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던 것이다.
2.
만일 소설의 주인공이 나에게 이런 주장을 들려준다면 나는 필경, "개소리마", "닥쳐", 듣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소설의 여주인공 완다는 "당신은 지금 제정신이 아니에요."하면서도 그의 이야기를 경청한다. 나에게 온 변화는, 나도 <모피를 입은 비너스>를 1번 경청한 것이다. 나는 내가 옳다, 정답이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3.
내가 다시 이 소설에 관심을 기우린 계기는, 음주운전을 하지 않기 위해서, 차가 있으면 술자리에서 술을 안먹기로 단단히 결심하고, 소주 대신 콜라나 음료를 먹는데, 이래저래 괴로움이더라. 그러던 차에 나는 이 고통이 나의 카르마를 바꾸는 과정이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즉 내가 나에게 승리하는 고통이란 생각이 들자 고통을 희열로 느낄 수 있다는 관점이 생겼다. 그래서 다시 찾아보게 되었다.^^
이젠 술자리의 술잔의 유혹에 크게 요동하지 않는다.
유혹은 내게 다른 방식으로 달콤하다.
4.
내 생각에, 이 소설의 마조히스트의 주안점은 감각적 쾌락을 위해 노예를 자청한다. 그를 사랑하는 여주인공은 그런 그를 깨우쳐주려고 애를 쓴다. 그의 청을 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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