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是以聖人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 (도덕경 2장)
'성인처무위지사'
성인이, (내가 즐겨쓰는 말로 바꾸면) '깨달은 신체'가 "일하는데 있어 무위로 처신한다"는 바는 내 보기에, 추울 때는 추위가 되고 더울 때는 더위가 되는 것인데, 다시 말하자면 춤출 때는 춤추는 게 목적이고, 공부할 때는 공부가 목적이고, 사랑할 때는 사랑이 목적이다. 밥먹을 때는 밥 먹고 똥쌀 때는 똥싸는 게 도라고 한다. 한마디로 순수. 순수는 성인의 덕목이다. 순수한 성인은 기쁘다. 성인은 어렵지 않다. 주변에서 무위로 행하는 행복한 신체들을 많이 본다. 순수한 사람들. 돈이 많아도 돈이 없어도 상관없다. 돈은 아무 문제가 안된다. 그렇다고 돈에 관심이 없는 건 아니다. 싫어하지도 좋아하지도 않을 뿐이라서 통연히 명백하다.
니체는, 자기 자신이 체험했기 때문에 한 철학자의 생애를 신비롭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철학자는 금욕적인 덕목들-겸손, 검소, 순수-을 독점하여, 그것들을 아주 특별하고 새로운, 실제로는 거의 금욕적이지 않은 목적들에 사용한다. 철학자는 그것들을 자신의 독특함의 표현으로 삼는다. 철학자에게서 그것들은 도덕적 목적들도, 또 다른 삶을 위한 종교적 수단들도 아니며, 오히려 철학 그 자체의 <결과들>이다. 철학자에게는 또 다른 삶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겸손, 검소, 순수는 이제 아주 풍부하고 넘쳐흐르는 삶, 능력으로 충만한 삶의 결과들이 되어, 사유를 정복하고 다른 모든 본능을 자신에게 종속시킨다.-이것이 바로 스피노자가 자연Nature이라고 부르던 것이다: 욕구에 기초해서, 즉 수단과 목적에 따라서 영위되는 삶이 아니라, 생산, 생산성, 능력에 기초에서, 즉 원인과 결과에 따라서 영위되는 삶. 겸손, 검소, 순수 이것들은 그[철학자]에게는 현자가 되는 방식이고, 자신의 신체를 지나치게 오만하고 지나치게 사치스러우며 지나치게 육감적인 원인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신전으로 만드는 방식이다.
들뢰즈, <스피노자의 철학>p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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