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1.
결혼한 이래로 허구한 날 술에 취해 주정하는 남편 때문에 가슴앓이를 해온 부인이 있었습니다. 그 부인은 20년 동안 '제발 우리 남편 술 끊게 해달라'고 지성으로 기도를 드렸고, 이제는 술만 봐도 독약으로 보일 지경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술마시는 남편 때문에 괴로워하는 부인에게 제가 말했습니다.
"보살님, 오늘부터 매일 아침에 108배를 하면서 '부처님, 우리 남편에게는 술이 보약입니다' 이렇게 기도하세요. 그리고 남편에게는 술이 보약이니 지금부터 술을 잘 챙겨 먹여야 합니까, 안 먹여도 됩니까?"
"잘 챙겨 먹여야 합니다."
2.
술을 먹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내려놓게 되었고, 남편이 술을 먹고 와도 별로 문제 삼지 않게 되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남편이 술을 먾이 먹고 온 날은 술상을 차리지 않아도 되니까 좋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조금씩 자기 마음이 편해지는 겁니다. 남편이 술을 먹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데 내 마음은 편안해지고 가정의 불화가 없어졌습니다.
3.
그런 일이 있고 두세 달 지난 뒤 그 부인이 또 저를 찾아와 하소연을 했습니다. 남편이 다시 예전처럼 술을 많이 먹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남편이 술을 많이 먹는다고 괴로워하고 술을 적게 먹는다고 좋아한다는 것은 아직도 내 마음이 술먹는 남편에게 꺼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4.
나의 괴로움이 남편이 술을 먹지 말야야 한다는 '자기 생각에 집착한 것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게 문제 해결의 핵심입니다. 남편이 술을 먹지 말아야 한다는 그 마음만 놓아버리면 남편이 술을 더 먹는다고 해서 실망할 것도 없고 덜 먹는다고 해서 좋아할 것도 없습니다. 처음 기도하면서 마음이 편안해졌던 것은 남편이 술을 덜 먹어서가 아니라 남편이 술을 마시면 안 된다는 생각을 내려놓았기 때문입니다.
5.
베푸는 마음 자체가 이미 기쁨임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자꾸 다른 보상을 구하다 보면 좋은 일을 하면서도 행복은커녕 오히려 괴로움을 느끼게 됩니다. 보살은 남편에게 술상을 정성스럽게 차려주는 마음에서 행복을 찾습니다. 술상을 차려주는 대가로 남편이 술을 끊게 되는 기쁨을 얻으려 한다면 그것은 이미 보살의 마음이 아닙니다. 제비 다리를 부러뜨려 복을 구하는 놀부의 심보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6.
'술이 보약'이라는 말은 남편을 나한테 맞춰 바꾸려 하지 말고 남편 입장에서 그를 대하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런 마음이 술상을 차려주는 일로 표현되는 것이고, 그렇게 상대의 입장에서 상대가 행복하고 기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일체중생을 제도하는 것입니다.
(금강경 강의 59~62)
7.
아상은 남과 구분된 나라는 존재를 고집하고, 모든 것을 내 중심으로 생각한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친구는 말할 것 없고 부부나 부모 자식조차 같은 것을 보고 들으면서 저마다 다른 생각을 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다 자기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이 아상으로부터 다시 두 가지 망상이 일어납니다. 내 것이라는 소유 의식과 내 생각이 옳다는 고집입니다. 내 것이라는 소유 의식은 탐욕을 불러일으키고, 내 생각이 옳다는 고집은 분노를 일으킵니다.
남편이 술을 마셔서 괴롭다던 부인은 술은 나쁜 것이라는 자기 견해를 고집하고 있습니다. 그런 부인에게 술이 보약이라고 생각을 바꾸라고 한 것은 내 생각이 옳다는 고집을 버리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내 고집을 버려야 상대를 바로 볼 수 있습니다.
아상에 빠진 사람은 수천수만의 그물코 가운데 오직 한 코만을 잘라 '이것이 그물이다'라고 외치는 것과 같습니다. 한 그물코만 가지고는 그물이 될 수 없듯이 아상에 빠져 있으면 실제의 이치를 알지 못하고 늘 실상과 동떨어진 세계관에 빠져 살게 됩니다. (64)
T.
내 보기에 '술이 보약'에는 두 가지 중요한 핵심이 있다.
첫째는 나의 분별을 고집하지 않는 것이 상대에게 끄달리지 않는 길이고 그럼으로써 자유로워지며,
두번째는 분별을 내려두므로써 내 중심으로 상대를 바꾸려하지 말고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보고, 상대의 행복과 기쁨을 주도록, 어떤 댓가나 상을 그리지 않고 보시하는 것이다. 여기에 공덕이 있다. 사랑.
'나의 사구게2'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볍게 살기 (0) | 2021.01.10 |
---|---|
소외를 회복하는 보시 (0) | 2021.01.10 |
금강반야바라밀경 해설 (0) | 2021.01.10 |
사랑이 무엇인지 이해한다면 [연기와 사랑] (0) | 2021.01.08 |
보살의 앎 (0) | 2021.01.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