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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첫번째 욕구에 기초해서, 즉 수단과 목적에 따라서 영위되는 삶은 욕망을 결여, 결핍으로 이해한다.
두번째 생산, 생산성, 능력에 기초에서, 즉 원인과 결과에 따라서 영위되는 삶은 욕망을 생산, 능동으로 이해한다.

2.
예쁜 신발에 예쁨이 없음을 자각할 때,
첫번째는 아무리 욕망하여도 결여는 당연하다.
채울 수가 없다. 공허하다. 욕망은 끝이 없다.
두번째는 따로 얻을 것이 없으므로 욕망은 어떠한 결여도 어떠한 불가능도 내포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생산한다. 욕망은 끝이 없다.

3.
욕망하는 생산은 어떠한 결여도, 어떠한 불가능도 내포하지 않는다. 실제성과 완전성은 동일하다. 하지만 욕망의 내재적 과정을 중단시키는 것은, 쾌락이다. 쾌락은 "좋은 게 좋은 거다,"하며 유혹한다.
광야에서 예수는 유혹 당한다. "온 세상이 다 보이지 않는가. 네가 나에게 경배한다면 세계를 다스리는 왕으로 만들어 주겠다." 그러나 40일 금식에도 기쁨이 충만한 예수는 사탄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다.
그 내재적 과정이 중단되지 않는다.

4.
포크너 만약 그가 일류 작가라면 그에게 방해가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또한 일류 작가가 아닌 사람에게는 어느 것 하나 크게 도움이 되는 것도 없습니다. 이런 문제는 일류 작가가 아닌 사람에게는 해당이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는 실내 풀장을 마련하기 위해 이미 자신의 영혼을 팔아 버렸을 테니까요. (윌리엄 포크너 p 239)

5. 내가 보기에 예쁘다.
"즉 마치 자기 자신에 의해 자기를 바라보는 것을 통해서만 충족되는 것처럼 보이는, 욕망에 내재하는 기쁨이 존재한다. 그 기쁨은 어떠한 결핍도, 어떠한 불가능성도 내포하지 않으며 쾌락으로 측정할 수도 없다." (천개의 고원 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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