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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사람들은 뇌가 혹은 기억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몰랐고 또 모르지만 분명하지 않은 것을 다른 것을 통해서 설명하는 일은 어쨌든 재미도 있고 재치 있는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어떤 관점에서 그런 식의 유비나 은유가 정당하고 의미 있나요?
뇌가 수행하는 연산을 어던 기계적 기제를 통해서 특징짓는 것은 전적으로 가능한 일입니다. 아무 문제없지요. 저도 당연히 은유적으로 '내가 추위를 느끼면 뇌가 온도스위치를 켠다'라고, 또는 마찬가지 경우에 '자동온도조절장치가 특정 외부 기온을 감지하고서 일종의 온도스위치를 작동시킨다.'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어떤 현상이나 일군의 현상들을 은유의 도움으로 기술하는 것은 명뱋기 정당합니다. 그때 물론 형식적, 수학적, 양적 혹은 시적 속성을 기술하는 모든 것들이 늘 하나의 비교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 의식되어야겠지요. 하지만 만약 은유적인 관계를 뒤집어 '뇌는 기계처럼 작동한다'라고 말하게 되면 그때는 뭔가 위험해집니다. 기계에서 출발해서, 기계를 파악했기 때문에 뇌를 이해한다고 믿는다면, 기억을 저장장치로 은유화해서, 기억을 파악한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어떤 특정 정보가 '저장된' 장소를 찾기 시작한다면 그 결과는 뇌의 기적을 보지 못하는것이 될 것입니다. 저는 그러한 위험을 상당히 일찍 의식하고서 늘 그런 식의 은유와 유비를 비판해 왔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제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허공에다 얘기했던 것이지요. (발명품 178)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제게 중심적인 것은 컴퓨터나 어떤 임의의 기계는 인공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입니다. 그것들은 우리에 의해 만들어져서 우리는 그것들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그런 기계의 작동방식으로부터 뇌 혹은 인간으로 되돌아가게 되면 자칫 우리가 이제 뇌와 인간을 이해했다는 생각이 생겨나기도 합니다. 알려지고 이해된 것으로부터 알려지지 않은 것, 이해되지 않은 것으로 나아가는 것(알려진 것에서 얻은 앎이 알려지지 않은 것에도 타당하리라 여기는 것), 그리고는 우리가 알려지지 않은 것을 파악했다고 쉽게 생각해버리는 것, 이것이 문제입니다. 원칙적으로 분석가능하지 않은 체계가 있다는 사실이 간과되는 것이죠. 이런 점을 이해한 사람에게 그러한 은유는 의심스러운 것이 됩니다. (179)
사이버네틱스 위에 서있는 인공지능이론이나 로봇 연구도 인간의 정신을 해독할 수 있고 머지않은 장래에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고 하는 주장에 감염된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이 영역에서도 (기계의 은유에 의해 규정된 사고틀 속에 갇혀) 인간이란 정보를 처리하는 체계로 지각되니까요. 그래서 사유의 진행은 '데이터처리'로 보여집니다. 그리고 인공지능학계의 거장인 마빈 민스키 역시도 뇌를 '살로 된 기계'라고 묘사했었어요.
그런 진술들은 그러한 은유의 은근한 힘을 보여줍니다. 보다시피 은유는 (뭔가를) 기술하는 기능을 상실하고 홀로 조재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벌어지는 일은 기묘한 기계 숭배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이미지와 사고방식은 정해진 길을 가게 만듭니다. 그래서 신경생리학자들은 특정한 때에 다양한 재단으로부터 많은 돈을 지원 받아서 뇌의 세포조직에서 기억심상들을 찾습니다. 기억심상은 인간이 살아 있을 때 겪은 경험들이고 그 순간부터 자신의 기억 속에, 은유를 따르자면, 저장한 것들입니다. 단어는 어디에 있는가? 할머니에 대한 기억 혹은 오늘 먹은 돼지고기 커틀렛에 대한 기억은 어디에 존재하는가? 등의 질문이 제기되었습니다. 하지만 기억심상을 찾는 일은 성과가 없었고 지금도 성과가 없습니다. 기억이라는 것은 뇌의 특정 장소에 위치 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에도 불구하고 (기억이 위치한 곳을 찾는 작업이 성과가 있고 없고를 떠나서) 저는 그런 생각과 은유들이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들은 (인간을) 단순화시켜서 이해하도록 호도합니다. 또 그것들은 어쩌면 기적과 같은 존재인 인간에게는 전혀 적합하지 않은 작업을 추구하면서 그것들이 가능한 것처럼 보이게 합니다. (180)
T.
기억심상을 찾지 못하는 것처럼 선불교에선 마음을 찾다찾다 찾지 못한다. 하여 마음의 실체없음을 동시에 작용은 있는, 무아를 이야기한다. 이처럼 마음은 기적과 존재인 인간의 본질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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