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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구게

인식의 무상

T1000.0 2020. 12. 17. 13:45

우리가 산출한 세계는 끊임없는 재귀과정 속에서 자신의 기원을 감춘다. 우리는 현재 속에서 존재한다. 과거와 미래는 현재를 사는 방식일 뿐이다. 세상의 이런저런 규칙성들에 (예컨대 우리의 가치나 취향 또는 주변 사물의 색깔이나 냄새 따위에) 우리가 익숙해지던 과정 중에 우리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지금 다시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불가능한 얘기다. 유기체의 역동성이 작업적으로 안정되는 방식에 이런 역동성의 발생과정이 구현되어 있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 생물학적 기제의 원리다. 생명활동은 자신의 기원에 대한 기록을 간직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란 기껏해야 세계를 산출하는 기제를 밝힐 설명을 언어로 내놓는 일뿐이다. 우리는 존재함과 동시에 인지적 '맹점'을 산출한다. 이것을 없애려면 또 다른 영역에서 또 다른 맹점을 산출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보지 못한다. 그리고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어떤 상호작용 때문에 정상상태가 깨질 때, 이를테면 다른 문화적 환경 속에 갑자기 놓이게 될 때 그리고 그것에 관해 성찰할 때 우리는 비로소 새로운 형태의 관계들을 산출하면서 "전에는 그것들을 깨닫지 못했다"거나 "당연한"것으로 보았다고 설명한다.(앎의 나무 272)

2.

저는 제가 지각하는 대상을 고정적인 것으로 체험합니다. 그러니까 최소한 일시적이나마 인식과정의 결과물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결과물들은 당신의 과정학이 말하듯이 계속되는 변동의 상태에 있는 것은 아닌 듯 합니다.

아니요. 우리가 대상(객체)이라고 말하는 것은 항상 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결코 하나의, 똑 같은 바로 그 대상을 지각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당신이 아침에 거울 앞에 서 있더라도 당신은 항상 다른 당신을 봅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저는 늘 나를 되풀이해서 인식해 왔습니다. 대상 그리고 얼굴들은 반드시 내 속에서 고정적이고 안정적인 인상을 불러 일으키는 (인식과정의 결과물로서의) 특징들을 갖고 있습니다.

당신은 아침마다 거울을 보고서 거울에서 보는 당신이 당신 자신이라는 확신을 갖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강조컨대 당신이 거울 속에서 보는 것은 결코 같은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변해가는 세계 속에서 결코 또 같은 '바로 그것'을 보지 않습니다. 지속적인 변화 속에서 어떻게 이런 안정적인 인상이 근거를 가질 수 있을까요? 이런 현상을 수학적으로는 상수를 산출해내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지속적인 변형의 과정에서 산출되는 상수 혹은 고정가치 말이지요. (발명품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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