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사구게

앎의 앎

T1000.0 2020. 12. 17. 16:38


칼은 날카롭다. 칼은 날카롭다는 것을 안다.
앎의 앎은 칼의 쓰임이 어떠해야하는지 윤리적 책임을 제시한다. 칼을 음식을 만드는 도구로 사용할지 범죄의 도구로 사용할지는 우리가 산출하는 세상이다.

2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모든 어려움의 핵심은 바로 앎을 잘못 아는데, 앎을 모른는데 있다. 우리를 얽어매는 것은 앎이 아니라 앎의 앎이다. 폭탄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는 앎이 아니라, 우리가 폭탄으로 무엇을 하려하는냐가 그것을 쓰느냐 마느냐를 결정한다. 우리는 흔히 이런 깨달음을 무시하거나 못 보게 스스로 억누르면서, 우리의 일상행위에 대한 책임을 떠맡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우리의 행위는 (우리의 모든 일상행위는 빠짐없이) 세계를 산출하고 굳히는 데 이바지 한다. 우리가 타인과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세계를 산출하는 바로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우리가 되는 것이다. 우리 행위의 초월성을 보지 못하면, 우리가 부응하고자 하는 상(像)과 실제로 산출하는 존재를 혼동하게 된다 .이런 잘못은 오직 앎을 알아야만 고칠 수 있다. (앎의 나무 279)

3.

어느 날 그는 그 지방 사람들이 열심히 쐐기풀을 뽑고 있는 것을 보았다. 뽑혀서 산더미처럼 수북히 쌓인 쐐기풀이 말라 비틀어져 있는 것을 보고 그는 말했다.
"벌써 말라 비틀어져 버렸군. 그러나 용도를 알아두면 도움이 된다오. 이 쐐기풀은 아직 어릴 때에는 훌륭한 야채가 되고, 쇠었을 때는 대마나 아마처럼 질긴 섬유를 얻을 수 있지요. 쐐기풀 섬유로 짠 옷감은 대마직과 맞먹소. 입사귀를 잘게 썰면 오리나 거위의 모의가 되고, 짓이겨서 주면 짐승의 털에 윤이 돌고 뿌리를 소금에 섞어 놓으면 빛깔 고운 노랑 물감이 되오. 게다가 쐐기풀 농사에 무슨 노력이 들겠소? 땅은 조금 있으면 되고 특별히 가꿀 필요가 없소. 쐐기풀 씨는 여물자마자 땅에 떨어지기 때문에 거둬들이기가 좀 어려울 뿐이오. 조금만 노력을 기울이면 쐐기풀은 유용하게 쓰이지만, 내버려두면 해로운 곳이 되오. 그래서 쐐기풀을 솎아내는 거라오. 인간도 이렇게 쐐기풀같이 되는 사람이 많소!."
그리고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다시 덧붙였다.
"여러분 명심하시오. 이 세상에는 나쁜 풀도 없고 나쁜 인간도 없소. 가꾸는 방법을 모르는 인간이 있을 뿐이오."
(레미제라블 232~282)

'사구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완전히 파악된 것 [깨달음]  (0) 2021.01.03
소통  (0) 2020.12.23
인식의 무상  (0) 2020.12.17
인생  (0) 2020.12.05
중도  (0) 2020.12.03
댓글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   2025/0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