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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가? 인스타그램에서 공유한 레고판이다. 나는 이 레고판을 이리저리 보다가 한 그림이 보였다. 나는 이전에 이 그림을 본 적이 있고 내게는 그 그림에 관한 앎이 있었다. 그 그림은,


고흐의 자화상이다.

레고는 고흐의 자화상이라는 정보를 담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보는 사람이 레고에서 고흐의 자화상을 떠올리지 못한다면 레고판은 그냥 레고판에 불과하다. 그냥 있는 그대로일 뿐이다.

2.
레고판이 고흐의 자화상을 표현한 정보전달은 레고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보는 혹은 듣는 청자에게서 산출된다. 정보는 매개되는 것이 아니다. 정보는 전달되는 것이 아니다. 정보는 청자가 해석해 내는 것이고 청자에게서 결정된다. 이것이 청자의 해석학의 요점이다.

3.

레고판을 만든 사람은 레고에 자신의 정보를 담았을 것이다. 허나 정보는 정보를 해석할 청자를 만나지 못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정보이다, 아니다를 알 수가 없다. 그냥 레고판이다.
세상의 모든 정보가 이와 같지 않은가? 청자가 해석해 내지 않고선 정보란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 여부를 알 수 없다.

4.

일상의 대화에서 이점을 성찰해보자.
내가 상대에게 무언가를 설명하는데 성공하는 것은 상대에게 이미 앎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상대에게 정보를 전달한 게 아니고 상대가 알도록 일깨워 줄 뿐이다. 말이 통하는 친구란 앎을 서로 공유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때로 내 설명을 못알아듣는다고 상대를 탓할 때도 있다. 허나 청자의 해석학 관점에서 보면 같은 한국어로 말한다해도 영어로 말하는 것처럼 못 알아듣는다. 이는 상대의 모자람이 아니라 내가 그의 언어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어떤 사람이 한 분야에 능통하다면 그는 자신의 일을 다양한 언어로 다양한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사람일 것이다.

5.

나는 다만 말할 뿐이다. 의미는 청자가 결정한다.
다르게 말해보겠다.
나는 다만 최선을 다할 뿐이다. 결과는 하늘에 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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