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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법도 설한 바가 없다

T1000.0 2022. 2. 6. 13:26

어떤 사상과 이념이 구원의 가르침(숭배의 대상)으로 바뀌는 것을 막으려면 어떤 언어 혹은 형식이 발견되어야할까요?

그와 관련하여 저는 늘 제안했었습니다. 제 견해로는 도덕이 외적이며 분명합니다. 반면 윤리는 내재적으로 머물러야 하며 개개인의 행위에 어느 정도 젖어 있어야 합니다. 제 생각에 도덕은 전제적(독재적) 요구, 설교, 규정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그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말하고, 우리의 권력을 확장하기 위해서 어떤 가르침을 강제하고 또 강제적 체계를 만들어 냅니다. 여기서 <논리철학논고>에서 비트겐슈타인이 적은 걸 상기하고자 합니다. 비트겐슈타인은 "만약 <넌 해야 해!>라는 형식의 윤리 규정이 제시되면 첫 번째 드는 생각은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지?>이다"라고 썼습니다. '넌 해야 해!'라는 말은 즉시 처벌에 대한 생각을 볼러일으킵니다. 만약 윤리가 도덕 혹은 도덕주의로 바뀌면 이상적인(바람직한) 것에 다가가는 순간 복종시키려는 전략이 생겨납니다. 그러니까 윤리에 있어서는 늘 '내가 해야 해!'가 중요합니다. 다른 사람의 행동을 내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게 아니고 내 행동을 내가 내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따라서 묶여 있음이라는 이념을 윤리적 법칙으로 부르는 것은 제가 볼 때 정말 말이 안 되는 일입니다.(진리는 거짓말쟁이의 발명품이다 261)

T.

부처님은 "한 법도 설한 바가 없다"고 하신다. 나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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