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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면 시비하는 습관을 버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진리 개념을 사라지게 할 수 있을까.]

1.
저도 모르지요. 그저 다른 말을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우리가 실재라고 부르는, 실재라고 생각하는) 놀이를 같이 하도록 다른 사람을 초대하려는 시도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의 바람은 내 말을 (나의 언어를) 잘 구사해서 정치가 됐건, 과학, 시 혹은 무엇이 됐건 모든 대화 속에 나의 윤리가 내재되도록 하는 것, 그래서 내가 어떤 문장을 말하더라도 늘 점잖은 사람으로 있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어떤 것도 강요하려 하지 않는 사람, 자신을 재판관이나 경찰과 같은 지위로 끌어 올리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각자의 여지를 부여하는 그런 점잖은 사람 말입니다. 이게 제가 궁긍적으로 올바른 언어와 설명형식을 말하기 위한 어떠한 범주도 어떠한 목록표도 언급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발명품이다 60)

2.
법상도 짓지 말라는 뜻은 비동비서산이라고도 고정하지 말라는 뜻이에요. 누가 동산이라고 하면 ‘틀렸다!’ 이렇게 접근하지 않고 ‘아, 저 사람이 이 산을 동산이라고 부르는 걸 보니 저 동네에 사는구나’ 이렇게 아는 거예요. 누가 서산이라고 하면 ‘아, 이 사람은 이 동네에 사는구나’ 이렇게 알아버리는 거예요. 옳으니 그르니, 틀렸니 맞니, 이런 시비 분별이 안 일어나고 상대의 입장과 상황을 이해해 버립니다.

‘어, 저 사람은 저 동네에서 왔구나.’
‘어, 이 사람은 이 동네에서 왔구나.’

이처럼 진리를 바로 알고 있으면 다툼이 안 일어납니다. 그런데 진리라는 상을 지으면 ‘너는 진리가 아니야!’ 이런 시비가 일어나게 돼요.
(스님의 하루 201128)


T.

화를 알아차리는 것처럼, 옳으니 그르니 분별이 일어나면 분별을 알아차리고 상대의 감정과 상황, 욕구를 살피자.

"내가 볼 때 핵심 문제는 기대하지 못한 어떤 것이 드러났을 때 우리가 우리의 확실성들을 버릴 준비가 되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실망스러운 체험들이 꼭 깊은 좌절과 분노로 연결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한 체험들이 정말 극적으로 새로운 전망들을 열어젖힐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기대들이 충족되지 않았음을 깨닫고, 너무 흥분하지 않고 새로운 방향을 잡기로 결정하는 거죠."(함으로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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