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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무명
-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우리는 결코 알 수 없습니다.
- 착각, 전도몽상, 알지못함, 무지
2. 행
3. 식
4. 명색(이름이 용도)
5. 6입
6. 촉(명색과 6입의 접촉)
- 우리가 아는 것이라고는 자극을 받은 우리의 감각이 우리 앞에 펼쳐내 보이는 것뿐입니다. 인식의 입구에서 (인식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소위 세계의 심부름꾼들은 (세계의 다양한 모습들은) 그들 자신의 특별한 속성들을 없애 버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연관하여 오늘날은 자극의 무차별적 부호화가 얘기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극 혹은 교란이 있다는 것만 알 뿐입니다. 이게 신경세포가 알려주는 전부입니다. 그러나 교란의 원인은 불분명하고 그 원인은 특수하게 부호화되어 있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시신경섬유를 식초로 자극할 경우 우리는 색이 있는 빛을 지각하게 됩니다. 혹은 미각을 느끼는 혀의 돌기를 몇 볼트의 전극봉으로 자극할 경우 우리는 식초 맛을 느끼게 됩니다. 생리학 교재에서 볼 수 있는 이러한 관찰을 통해 볼 때 외부세계가 내부세계에 베껴진다고 말하는 것은 우스꽝스럽고도 말이 되지 않는 얘기라 할 것입니다. 식초가 색의 흔적이 되고 전기가 식초가 되는 겁니다!
그러면 뭐가 밖에 있지요? 그런 생각을 계속 밀고 나가게 되면 우리는 지각과 느낌이 우리 자신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지를 모른다는 것이고 외부세계에 색깔, 냄새, 통증, 따스함과 차가움이 있는지 없는지 결정할 수 없다는 얘기가 됩니다.
7.수: 느낌
- 보세요. 여기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놀라운 일입니다. 모든 것이 살아가고 있고, 음악을 연주하고, 사람들은 색을 보고 따스함과 차가움을 경험하며, 꽃 혹은 매연 냄새를 맡으며 수많은 느낌을 체험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구성된 관계들입니다. 그것들은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고 안에서 생겨납니다. 말하자면 음악을 듣는 일의 물리적 원인은 공기 중의 몇몇 분자들이 다소 느리게, 다른 분자들은 약간 빠르게 고막에 도달하기 때문이라고 해도 될 것입니다. 이것을 사람들은 음악이라고 말하지요. 색을 지각하는 것은 망막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몇몇 세포군이 여기서 색의 느낌을 산출한다고 할 수 있겠지요. 외부세계로부터 내부로 도달하는 것은 전자기적 파동이고 이것이 망막에서 자극을 발생시키며 특정하게 배열되는 경우 색깔의 지각으로 이어지는 겁니다. (발명품 22~23)
8. 애
- 좋고 싫고, 욕구
9. 취
- 몸의 욕구를 의식하는 욕망으로의 집착 과정, 행위
10. 유
- 욕망하는 업의 발생, 취의 결과, 열매 동시에 씨앗, 종자
[여기까지의 10연기가 유위법의 사전 과정이고 나머지 11생 12노사가 유위법]
11. 생
- 업에 의해, 씨앗이 싹트고
12. 노사
- 늙고 죽는 일체의 괴로움
12연기는, 업식의 윤회 속에 나고 늙고 죽는 유위법.
12연기를 되집어, 노사의 원인은 무엇인가? 라고 묻게되면 그 시작인 무명, 즉 모르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모름을, 그러니까 이 채울 수 없는 무지의 자리를 환상으로 메우는 데 있다. 3중의 환상이 작용한다
요컨대 우리가 사물들을 인식하는 조건들과 우리 자신에 대해서 의식을 갖는 조건들 때문에 우리는 부적합한 관념들, 혼란스럽고 절단된 관념들, 즉 자신들의 고유한 관계들로부터 분리된 결과들만을 가질 수 밖에 없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는 어린 아이들이 행복하다든가 최초의 인간이 안전하다든가 하는 것을 결코 생각할 수 없다. 원인과 본성에 대해서 무지하여 사건 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고, 따라서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법칙의 결과들을 겪어야 하는 그들은, 모든 것의 노예이며, 자신들의 불완전성의 정도에 따라 불안 속에 있는 불행한 자들이다.(그 누구도 스피노자 이상으로 완전하고 행복한 아담이라는 신학적 전통에 반대하지 못했다.)
어떻게 평온한 의식이 불안을 가지게 될까? 어떻게 아담은 자신을 행복하고 완전하다고 상상할 수 있었을까?
1) 목적인이라는 환상: 의식은 결과만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사물들의 질서를 전도시킴으로써 자신의 무지를 메운다. 의식은, 한 신체가 우리 신체에 미친 결과를 외부 신체의 작용의 목적인으로 만든다.
[이 때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원인을 전제함으로서 무지를 확실성으로 대체된다.]
2) 자유명령이라는 환상: 이제 의식은 자신을 제1원인으로 간주하게 되고, 신체에 대한 자신의 지배력을 내세운다.
['나'의 가립]
3) 신학적 환영: 의식이 자신을 목적으로 조직하는 제1원인으로 상상할 수 없는 곳에서, 의식은, 지성과 의지를 갖고 있는 신, 목적인과 자유 명령에 의해 행위하며, 영예와 처벌에 따르는 세계를 인간에게 마련해 놓은 신을 내세운다.
[무명이 신으로 둔갑]
의식은 환상들로 형성된다고 말하는 것으로도 충분하지 않다. 의식은 자신을 구성하는 삼중의 환상, 즉 목적인의 환상, 자유의 환상, 신학적 환상과 분리 불가능하다. 의식은 두 눈 뜨고 꾸는 꿈일 뿐이다.
12연기의 무명을 청정한 마음으로 보지 않고, 삼중의 환상이 무명을 덮어버린다.
의문인 건, 왜 덮어버리나? 왜 우리는 이 마술적 포획에 걸려드나? 원인은 또다시 모르기 때문이다.
왜 그런 건지 모르는 상황에 처한 인간. 결과만을 받아들이게 된 조건에의 예속. 무지와 예속에서 인간을 구원하는데 필요한 것은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보는 무심이다. 요컨대 있는 그대로를 여실히.보는 것이 우리를 해탈하게 하는 길이다. 환상 없이, 환상처럼 보는.
13.
마지막으로, 내 생각에, 업식이란 3의 식과 10의 생이 반복되면서 산출되는 과정이다. 업식에서 벗어나기란 업식을 알지 않고선 불가능해 보인다. 업식을 알지 못한다면 업식을 알지 못한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는 어린 아이들이 행복하다든가 최초의 인간이 안전하다든가 하는 것을 결코 생각할 수 없다. 원인과 본성에 대해서 무지하여 사건 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고, 따라서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법칙의 결과들을 겪어야 하는 그들은, 모든 것의 노예이며, 자신들의 불완전성의 정도에 따라 불안 속에 있는 불행한 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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