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기에 예쁘다. 오직 모를 뿐. "요하네스 뮐러가 무엇을 관찰했나요? 여러 가지 감각의 신경들은 항상 그에 상응하는 느낌들, 예를 들어 빛, 소리, 압력 등을 불러일으키는데 그는 이러한 일이 그런 느낌을 초래하는 자극의 물리적 속성과는 무관하게 진행된다는 점을 확인했습니다. 우리 감각이 원래 그대로의 실재를 반영하지 않는다고요? 그래요.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우리는 결코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이라고는 자극을 받은 우리의 감각이 우리 앞에 펼쳐내 보이는 것뿐입니다. 인식의 입구에서 (인식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소위 세계의 심부름꾼들은 (세계의 다양한 모습들은) 그들 자신의 특별한 속성들을 없애 버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연관하여 오늘날은 자극의 무차별적 부호화가 얘기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것일 뿐. 좋고 나쁨이 그것에 없다. 내가 보기에 좋고, 나쁘다. "어떤 사람의 진정한 지혜는 영속적인 자기 고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찰의 역량에, (특정한 상황들을 정확하게 지각해내는 것을 방해하는) 이러저러한 신념들을 기꺼이 버릴 수 있는 자발성에 있다는 것이 내 견해입니다. 현명한 사람은 늘 자기 자신을 관찰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사물에 집착하지도 않습니다. 또한 그들은 자신들이나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해야만 하는가를 지시하고 있는 궁극적 진리에 인도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p54
그것은 그것일 뿐. 좋고 나쁨이 그것에 없다. 내가 보기에 좋고, 나쁘다. 그것으로부터 자유롭다. 옛날에 어질고 현명한 왕이 있었다. 연일 국정에 몰두하던 왕이 모처럼 짬을 내 신하들과 함께 사냥을 떠났다. 아침 일찍 떠났다가 저녁에 환궁할 요량이었는데, 사냥에 심취한 나머지 미처 해가 기우는 것을 알지 못했다. 날이 너무 어두워 궁궐까지 돌아갈 수가 없었다. 충직한 신하들은 애가 탔다. 왕이 말했다. 저기, 저 민가에서 하루 묵도록 하자. 신하들은 펄쩍 뛰며 두 팔을 내저었다. 어떻게 전하께서 누추한 여염집에 들 수가 있겠느냐며, 밤길을 재촉해서라도 궁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그때 왕이 말했다. 내가 저 집에 들어가면, 내가 백성이 되겠느냐 아니면 저 집이 궁궐이 되겠느냐. (문학동네 20호, 19..
현재를 산다는 건 현재를 재창조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