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관찰하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 그래서 구분을 하는 것이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을 깨닫는 것. 우리는 새로운 체험 영역에 도달한 것입니다. 우리의 깨달음을 깨닫는 것 그리고 우리의 이해를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하고 있는 것에 대한 책임감을 낳을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의 구분 작동들을 통해 우리가 창조하고 있는 것에 대한 책임감을 낳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종류의 통찰에는 불가피한 어떤 것이 있습니다. 일단 이것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우리가 실제로 그것을 깨닫고 있는지 그릭고 또한 이 깨달음을 깨닫고 있는지를 우리 자신이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모른 체 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관찰자라는 개념은 관찰하기의 작동을 연구하고 '이해의 이해'가 가진 순환성을 직시하는 과제..
0.나와 생각을 함께하고 그 생각을 자신의 성찰을 위한 기초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우선, 한때 생물학에서 매우 인기가 있었고 그렇지만 실제로 우리가 신경체계를 이해하는 데 그렇게 많은 기여를 하지 못한, '정보처리' 개념에 대한 잘못된 해석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오랫동안, 유기체의 신경체계가 외부로부터 오는 정보를 처리해서 이 유기체의 적절한 행위를 발생시킨다는 게 지배적인 생각이었습니다. 환경에 위치하는 정보의 원천은 주어진 외부 상황과 관련해 적절하게될 행위를 발생시키는 방식으로 유기체의 구조를 변경시킬 것(이라는 것이 이러한 믿음의 가정)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견해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신경체계는 이런 식으로 작용하지 않으니까요.(함으로 96) 1. 관찰자가 외적이라고 서술하는 대상에 반사..
푀르크젠 이미 전설이 되어버린 선생님의 의 몇 페이지를 죽 읽다 보면 우리는 어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순진한 문장과 마주치게 됩니다. 제가 볼 때에는 이 문장이 선생님의 전체 저작[작업]에서 핵심적인 중요성을 갖는 게 아닌가 싶은데요. "말해지는 모든 것은 관찰자에 의해 말해지는 것이다." 이 말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마뚜라나 말해지는 것은 어떠한 상황 하에서도, 그것을 말하고 있는 사람과 분리될 수 없습니다. '관찰자와 독립적인' 실재와 관련해서, 그것이 존재한다는, 게다가 명백하게 주어진 것으로 간주된다는 주장을 타당한 것으로 만들어 줄 가능성은 없습니다. 그 누구도 외부의 실재 또는 진리에 접근할 특권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할 수 없습니다. p39 T1000.0 : "흔들리는 것은 깃발이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