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이나 들을 강의한 책이 나와서 화두를 풀이하기도 하고, 불교계 신문들에 그와 같은 방법으로 화두를 분석하는 경우가 있는데, 한편에서는 이를 두고 화두의 생명을 잃게 한다고 반론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화두선에 대해서 말씀드릴 처지는 아니지만, 위와 같은 논쟁도 있고 해서 우선 화두에 대한 나름대로의 제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선수행의 방법면에서 여러 가지 차이가 있을 수 있는데 화두는 간화선 수행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앞서 좌선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강조했던 대로 선의 근본은 삼독심의 소멸에 있습니다. 삼독심을 없애는 것이 깨달음이기 때문입니다. 화두선에서 깨달음은 일상에서 쉽없이 일어나는 삼독심에 따른 번뇌가, 화두라고 하는 의심에 따라서 눈 녹듯 사라져 다시는 그와 같은 마음이..
"첫번째 제가 유튜브를 시작한 가장 큰 이유, 바로 첫번째 가족의 추억을 담는다. 그래서 가족 브이로그를 정말 많이 찍었지만, 사실 연예인 브이로그 보기도 바쁜 이 시간에 제 브이로그는 당연히 인기가 없어죠! 제가 찍어서 올리고, 그걸 내가 보고, 내가 좋아요 누르고, 가끔 댓글 하나 달리면 가족. 그렇지만 제가 브이로그를 시작하기 잘했다고 느끼는 건 뭐냐면, 내가 하고 싶은 걸 이렇게 찍으니까 되게 흥미가 생겼었고 (재미가 있었고) 그러면서 영상을 촬영하는 그리고 편집하는 실력이 많이 늘었어요.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우리 가족의 추억이 담기고, 채널이 소담이 성장일기가 됐다는 거 이게 정말 중요해서, 저는 정말 진심으로, 이 영상 전체하고 1억하고 바꾸자고 하면 저는 정말 안 바꿀거에요.(진심^^) ..
생생한 삶은 명사화되지 않는 변화들입니다. 변화의 주체는 없습니다. 다만 변화만 있을 뿐입니다. 이것을 우주법계의 춤이라고 합니다. 법계 전체가 맞물린 춤사위의 '우리'일 뿐, 춤을 추는 주체가 따로 없습니다. 아울러 춤이 멈춘 적도 없습니다. 정지도 동작도 춤일 뿐입니다. 오히려 가장 극적인 움직임이 됩니다. (법성게 102) 2. 제게는 춤추기의 비유가 가장 마음에 듭니다. 그러나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는 맞지 않겠지요. 영어 표현에 '혼자서는 탱고를 출 수 없어! 탱고를 추려면 둘이여야 해.' 라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필요로 하고 세상과 춤추기를 시도하며 서로를 이끌고 함께하는 것, 공동체가 됩니다. 사람들은 지금 춤추도록 프로그래밍 되어 춤추기로 결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그저 ..
앞에서 당신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이미지가 당신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 같다고 말했지요. 그렇게 말할 때 당신은 어떤 종류의 이미지를 생각하고 있었나요? 모르겠습니다. 나는 모든 것을 봅니다. 삶이 당신의 눈 앞에서 펼쳐지고 당신은 그것을 보는 거지요. 그게 전부입니다. 당신은 언제나 이미지들에게 폭격당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당신의 마음에 들러붙어 어떤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미지는 아주 소수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어떤 것은 정말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지요. 문제가 되는 것은 이미지가 아니라, 그것을 가지고 당신이 무엇을 하는가, 그리고 어떤 이미지들이 다른 이미지들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따위이기 때문에, 이러한 효과에 대해서 무언가 말을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예를 들어서, 스핑크스의 ..
도대체 무엇이 당신으로 하여금 세상과 지각의 일치(상응)를 그토록 절대적으로 요구하게 만드나요? 사실 우리 눈앞에 아름다운 붉은 머릿결을 가진 소녀가, 붉은 주사위가, 혹은 붉은 식탁이 놓여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우리가 아는 것은 우리가 뭔가를 지각하고있다는 사실이며 그 이상은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대개 우리의 감각이 세상 속의 대상들을 확증한다는 데서 출발합니다. 탁자를 보고는 가까이 다가가서 나무를 만져보고 그리고는 믿습니다. 탁자를 느낀 촉감은 탁자의 존재를 검증하며 눈이 받아들인 것을 최종적으로 검증한다고. 확증에 대한 이같은 생각은 내게는 아무 의미 없어 보입니다. 왜냐하면 마지막에 탁자로 확인되는 어떤 실재의 존재 자체는 이미 전제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신 말은 ..
1. 다시말하면 마음과 대상은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은 대상을 떠나서 존재할 수 없고 대상도 마음을 떠나서 존재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본다고 하는 것은 대상이면서 동시에 자기 마음이고, 자기 마음이 동시에 대상이 되어 있는 관계입니다. 이것을 옛스님들께서는 두 거울이 마주 보고 서로를 비추고 있다[양경쌍조]라고 하셨습니다.(법성게 94) 두 거울이 서로를 마주 비추듯 대상이면서 동시에 마음이고 마음이면서 동시에 대상임을 분명하 알아차려 자타의 분별을 떠나 사는 것으루두 모습이 없다고 합니다.(94) 2. 발자크에 관해서라면, 피카소가 을 가지고 했던 작업에 대해 앞에서 언급했지요. 당신은 그가 그 책을 위해 그렸던 동판화와 드로잉들을 기억할 겁니다. 글쎄요. 그것들은 어떤 작품이 우..
만일 우리가 말해지는 모든 것이 불가피하게 관찰자에게 다시 귀속된다는 것을 여전히 깨닫고 있다면, 우리의 보편타당한 실재는 무수한 상이한 실재들로 산산조각이 나 버립니다. 이 지구상에는 60억이 넘는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선생님은 60억 이상의 실재들이 존재한다고 말할 건가요? 그것은 이론적으로 가능하지만 사실상 거의 있을 법하지 않습니다. 만일 우리가 60억 사람 중에서 약 50억이 괄호 없는 객관성의 길을 따른다고 가정한다면, 그들은 다소간, 동일한 실재 영역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 중 어떤 사람들은 알라신을 믿고 또 다른 사람들은 여호와나 예수를 믿습니다 . 하지만 또 어떤 사람들은 불가지론자들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의식을 무조건적으로 타당한 실재라고 생각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