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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결정할 수 있는 질문이란 항상 올바른 답, 가능한 답을 이미 제시하는 어떤 틀 안에서 결정됩니다. 그런 질문의 결정가능성은 사람들이 당연히 받아들여야하는 특정 게임규칙과 형식을 통해서 보장됩니다. 삼단논법, 문장론(문법), 산술법 등이 그런 형식의 예입니다. 우리는 논리수학적 연결망이라는 틀 속에서 하나의 결정점(하나의 문제 혹은 하나의 질문)으로부터 다른 결정점(답 혹은 해법)에 도달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2546이라는 숫자가 2로 나누어지는가에 묻는 질문은 즉각 대답 가능합니다. 마지막 숫자가 짝수로 된 수는 2로 나누어진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으니까요.

결정할 수 없는 질문은 무엇입니까?

그건 고차원적 본질의 존재, 삶의 의미, 세계의 성립, 사후의 생 등을 다루는 물음입니다. 그런 질문은 있을 법한 수많은 답을 갖고 있습니다. 우주는 어떻게 생겨났는가 라는 질문을 하면 이게 어떻게 결정됩니까? 만약 물리학자에게 답을 구하면 쉽게 알게됩니다. 모두가 알듯이 백억 혹은 이백억년 전에 빅뱅(근원적 충돌)이 있었고 그로부터 오늘날 우리의 우주가 생겨났습니다. 우리는 지금도 충돌의 여음으로 여겨지는 미세한 소음을 거대한 초음파 안테나를 통해서 들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신앙이 깊은 카톨릭 신자에게 묻는다면 천지 창조의 매일 매일을 기술하는 자세한 창조의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만약 인도의 힌두교도에게 같은 질문을 하게 되면 그는 이렇게 얘기할 겁니다. "어린애들도 알듯이, 한때 거북이 한마리가 있었는데 다른 거북이가 그 위에 올라앉았고 또 그 위에 다른 거북이가 올라갔는데 맨 위 거북이 위에 우주 속 우리가 앉아있다"라고 말이죠. 이 사람 저 사람, 투르크메너족에게, 에스키모에게 질문을 하더라도 우리는 그들 모두에게서 어떻게 우주가 생겨났는지에 대한 답을 얻을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 옳은지 어떻게 결정해야 할까요? 이러한 질문은 결정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답은 답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뭔가를 알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이기도 합니다. 요약하자면, 우주의 근원에 대해서 제가 뭔가를 말하면 저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말합니다. 누가 저에게 거북이에 대해서 얘기하면 저는 '아! 저 사람은 힌두교도이구나'를 압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빅뱅에 대해서 얘기하면 저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압니다. 아하! 넌 물리학자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는 거죠. (진리는 거짓말쟁이의 발명품이다 252)

2.
인과도 마찬가지입니다. 선행을 하면 천당에 가고 악행을 하면 지옥에 가겠지요. 그게 바로 인과입니다. 그러나 내 마음이 아무것도 만들지 않으면 어디로 갑니까?
그렇게 때문에 자신이 시공과 인과를 만듭니다. 나는 내 세상을 만들고, 당신은 당신 세상을 만들어요. 고양이는 고양이의 세상을, 개는 개의 세상을 만듭니다. 신은 신의 세상을, 부처는 부처의 세상을 만들어요. 당신이 100퍼센트 신을 믿으면 죽을 때 당신 세상은 없어지고 신의 세상으로 갑니다. 100퍼센트 부처를 믿으면 당신 세상은 없어지고 부처의 세상으로 갑니다. 그러나 자신의 참나를 100퍼센트 믿으면 참나의 세상을 만들어 대자유인이 됩니다. 천당이든 지옥이든 아무런 걸림 없이 오고 갈 수 있게 되는 거지요."
숭산 큰스님께서 질문자를 바라보며 질문하셨다.
"자, 당신에게 묻겠습니다. 어떤 게 좋습니까?"
질문자는 아무 말도 없었다.
"입을 열 때마다 당신 세상이 만들어집니다."
질문자가 물었다.
"그럼 입을 열게 하는 그 사람은 누구죠?"
"이미 알고 있지 않습니까!"
대중이 웃는 가운데, 가운데 앉아 있던 질문자가 큰 스님께 절을 올렸다.
(부처를 쏴라 128)

3.
그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에게 저는 시간나면 저의 글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유감이지만 제 강연이나 책 어디에도 존재에 대한 지침도 없고 저는 그런 존재로부터 생겨나야하는, 도달해야 할 당위에 대해서 얘기하지도 않습니다. 저는 오히려 위에 언급된 두 가지 태도 중 어떤 것이 더 옳고 더 진실된 것인지 원칙적으로 결정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세상과 엮여 있는 것과 세상과 분리되어 있는 것 중 어떤 게 옳은지 저의 관점에서 결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결국 제가 두 가지 태도 중 어떤 것에 표를 던질지는 저에게 저 자신에게 달려 있는 것이 됩니다. (발명품 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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