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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봅시다. 물은 0도가 되면 얼기도 하고 녹기도 합니다. 얼음에서 물로 물에서 얼음으로 변하는 순간은 얼음도 물도 아니면서 또한 물이면서 얼음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또 개의 방을 나누는 벽은 방 A에 속하면서 동시에 방 B에 속하면서 동시에 방 B에도 속하기 때문에 이 때의 벽은 A이면서 B[非A]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과학의 성과에 의하면 물질의 본질도 고정된 것이 아니고 물질이라고도 물질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고, 더구나 이와 같은 관찰은 관찰자가 물질의 어떤 특성을 보려 하는가하는 의식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물과 파도, 얼음과 물의 접면, 방A와 방B의 접면, 그밖의 많은 것들과의 접면에서 보면 한 곳에 한없는 인연들의 만남이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낱낱은 자기만을 고집하지 않고 접면의 모양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아 같이 접면의 얼굴은 있으나 접면의 자아는 없는 것이 공의 대한 비유입니다.
이것이면서 동시에 많은 저것들로 있을 수 있는 것은 이것과 이것의 바탕이 공空이기 때문입니다. 바꾸어 말하며 공은 연기관계가 성립할 수 있는 근본 까닭입니다. 공이기 때문에 이것과 저것이 함께 있거나 없고, 일어나거나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공은 그 자신의 모습을 결정하여 갖는 것이 아니라 삶을 이루고 있는 모든 중생과 사물들의 바탕이면서 현상 그대로 입니다.
공은 그 자신의 모습이 아니라 온갖 모습입니다. 더군다나 온갖 모습은 물과 얼음이 주변의 조건에 의해서 계속 바뀌듯 잠깐이라도 멈추어 있지 않고 이것이면서 저것으로 저것이면서 이것으로 있는 접면이 줄곧 옮겨 가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무상이고 무아입니다. 무상과 무아란 시간 밖에 있는 삶의 특성이라 했습니다.
시간 밖이라는 뜻은 지금까지 우리들이 느끼면서 살고 있는 시간과 공간이 태어나기 이전부터 결정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인식이며, 태어난 순간 자신의 시공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인간세상에 태어나는 순간 인간세상에 맞는 시공을 자신이 연출한다는 뜻입니다.
(법성게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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