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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체험의 순간에는, 지각과 환각을 구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게 내 주장입니다. 

만일 당신이 창문 밖에 유니콘이 있다고 나에게 진지하게 말하고 있다면, 그때에 당신은 완전히 그 세계에 빠져 살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의 전체 몸은 그러한 체험 속에서 사는 것입니다. 당신은 그 세계에 흡수됩니다. 

오직 나중에 가서야 유니콘이 한 쌍의 새들로 인한 나뭇잎들의 다소 이상한 움직이었음을 확인하는 것이 가능할 것입니다. 

이것은 환각이란 그것이 다른 체험에 의해 자격을 박탈당하기 전까지는 타당한 것으로 남아 있는 체험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2.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가 보고 서술하는 것이 '실재하는 어떤 것'인지를 실제로 전혀 모르겠군요.

체험의 순간에는 이러한 구분이 원칙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항상, 다른 체험들에의 준거에 의존합니다. 다른 체험들은 다시 또 다른 체험들과의 관계에서 인식 혹은 환각으로 분류될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계속 이어집니다. 

실제로 내가 묻고 싶은 것은 우리가 가정하는 것이 환각적이지 않다는 것을, 우리가 심층적인 의미로 도대체 확신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의 우리의 지각이 내일 환각으로 드러날 것인지 결코 알 수 없습니다. 물론 그것은 우리의 전체의 삶을 통틀어 타당한 것으로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결국 어제 내가 말한 모든 것이 잘못이었다고 내일 당신에게 고백할 수도 있습니다. 주말쯤 되어서 당신의 칠레 여행이 실수였음이 드러날지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당신이 녹음된 테이프들을 다시 듣게 된다면, 당신은 움베르또 마뚜라나가 완전히 난센스를 말하고 있다고 결론짓지는 않을 것입니다.

나는 함께 하는 우리의 시간을 위해 철저하게 준비를 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선생님의 책들을 읽었고, 표를 끓었으며, 호텔을 예약했습니다. 이 모든 안전성을 급작스럽게 상실하고 나의 이전의 신념들이 붕괴된다면 나는 아마도 엄청 당황스러워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겨우 이러한 단순한 이유만으로 나는 나의 칠레 여행을 실수로 간주할 마음을 갖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당신이 언젠가 결국엔 이러한 평가로 마무리하지 않을 것인지 쉽사리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측면은 우리가 타당한 것으로 만들고 있는 체험들을 우리가 항상 유지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당신은 옳습니다. 우리의 삶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이러한 안정성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는 암묵적인 신뢰로부터 작동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구조적 연동의 정합성 내부에서 지내기 때문에 우리는 보통 실수를 저지르지 않습니다. 따라서 실수는 드물게 일어나고, 관찰자와 독립된 실재에 준거에 어떤 실패를 가리키지도 않습니다. 실수들은 언어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후험적인 평가들 및 성찰입니다. (함으로 219)

T.

요컨대 지금 나의 체험이 지각인지 환각인지 알 수 없고, 암묵적인 신뢰 속에 안정성을 필요로 한다는 건. 하나의 체험은 체계의 변화일 뿐이고 이를 지각인지 환각으로 구분하는 영역은 외부 관찰자의 분별이므로 이 분별을 눈을 뜨고 꾸는 꿈으로 말할 수 있겠다. 우리가 생각 속에 산다면 꿈 속에 사는 것이다. 다만 우리가 누구나 꿈 속에 산다는 걸 아느냐 모르느냐가 중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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