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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책상이라는 말을 떠올릴 때마다 책상이라는 사물이 눈앞에 없더라도 같은 이미지가 항상 떠오릅니다. 이는 책상에 대한 인상을 고정시켜서 말[名]로 표현한 것이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사물을 그와 같이 보는 힘, 곧 종자가 책상이라는 영상을 동일불변의 실체로 보게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책상의 실제는 만남의 조건에 따른 변화이지만, 말[名]의 영상은 늘 일정하게 됩니다. 책상의 변화가 언어로서의 고정된 이미지인 책상이라는 틀에 의해서 얽매이게 된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책상이라는 말이 책상으로부터 파생된 것 같지만, 책상으로 규정하는 것은 책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명언종자에 의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두가지는 전혀 다른 구조 속에 놓여 있는 것이지요. 우리들의 생각이 현실을 떠나 있다는 것입니다. 말[名]의 자성은 허망이요, 생각은 허상의 집합이요, 책상은 변화의 한 현상일 뿐입니다. (유식 30송 46)

[하나 덧붙이자면 우리는 책상을 보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가 책상이라고 보는 것을 본다.(일체유심조) 사실 이것은 책상이 아니다. 책상이라하지만 책상이 아니므로 그 이름이 책상이다.

또 하나.
책상이 거기 있음을 너는 어떻게 알지? "내가 보니까"
우리는 본다는 '함'을 통해 책상을 독립적인 것으로 구분한다. 그러나 본다는 '체험'은 내재적으로 나와 책상을 분리하지 않는다. 일체다. 볼때는 봄만이 있다. 주체도 대상도 없다. 일체유심조.(우리는 책상이라고 보는 것을 본다)]

T.
지혜는, 생각이 허상의 집합임을 성찰하여 아는 것이 하나요, 따라서 허상에 집착하지 않고 생각을 내려놓는 무분별이 또 하나다.

"그렇지만 어떤 사람의 진정한 지혜는 영속적인 자기고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찰의 역량에, (특정한 상황들을 정확하게 지각해내는 것을 방해하는) 이러저러한 신념들을 기꺼이 버릴 수 있는 자발성에 있다는 것이 내 견해입니다. 현명한 사람은 늘 자기 자신을 관찰하지 않습니다. 또한 그들은 자신들이나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해야만 하는가를 지시하고 있는 궁극적 진리에 인도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있음에서 함으로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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