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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생각에, 근본적인 모름과 이미 정해져 있지 않음은 그 결을 구분할 필요가 있는데, 정해져 있지 않음이 인식의 문제, 생각의 문제를 부각시키는 반면 근본적인 모름은 전적으로 신체적이기 때문이다. 스피노자에 주목하면, "인간의 정신이 자기 신체의 변용의 관념에 의해 외부의 물체를 생각할 때, 우리는 정신이 그것을 표상한다고 말한다. 게다가 정신은 다른 방식으로는 외부의 물체들을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서 표상할 수 없다. 따라서 정신은, 외부의 물체를 표상하는 한에 있어서, 그것에 대한 타당한 인식을 갖지 않는다. Q.E.D"
(스피노자, <윤리학> 2부 정리26 )
2.
"다른 방식으로는" 우리가 본다는 것은, 또 안다는 것에 다른 방식이란 없다. 오직 신체를 통해서, 스피노자식으로 말하면 신체 변용의 앎(알아차림)에 의해서만 알 수 있다. 이 점이 핵심이다. 사람들은 신체를 떠나서 본다고 생각한다. "저기 있다"는 건 '저기 있음으로'라고 생각한다. 너무도 당연하지 않은가. 그런데 저기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하면 다른 방식이란 없다. 그것을 너는 어떻게 아는가? "내가 보니까!"
3.
"내가 보니까" 이면의 세계는 모른다. 알 수 없다.
이 근본적인 모름. 無明. 이 근본적인 무지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요컨대 무지를 통하여 무지로 본다면 무지는 더 이상 문제가 안된다.
내가 모른다는 것은 없어지지 않는다. 허나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앎으로써 무명은 더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무명은 없고 무명이 없어지는 것도 없다.
"무명은 없고 또 무명이 없어지는 것도 없다."
(무무명 역무무명진無無明 亦無無明盡 <반야심경>)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소크라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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