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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라는 것도 인과적으로 얽힌 하나의 사건의 흐름이다. 10년 전의 ‘나’와 오늘의 ‘나’ 사이에는 동일성(同一性)을 말해주는 아무런 요소도 없다. 몸을 이루는 물질도 모두 새 것으로 바뀌었고, 느낌이나 생각과 같은 정신적인 요소도 모두 새 것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10년 전의 ‘나’와 오늘의 ‘나’는 인과적으로 연결됐기 때문에 ‘나’라는 존재가 10년 동안 살아온 것처럼 느껴질 뿐이다. (김성구교수, 홈월간금강연재에서 인용)
T.
나라고 하는 나는, 살아가는 데 있어 인과적인 흐름을 선택과 책임으로 자각하고 자연표류하는 과정 속에서 나다움이 생겨난다. 우리는 누구나 무아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나는 그렇지 못했을 때의 나와 다르게 표류할 것이다.
2.
나는 죽음에 대한 모든 두려움에서 벗어났습니다. 나는 사물들에 대한 집착을 그만두었고 내 자신을 그것들[사물들]과 부당하게 동일시했던 것을 그만두었습니다. 죽음과 마주침으로써 나는 내가 전체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체험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더 성찰적이게 되었고 덜 교조적이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내가 나 자신을 '모든 세속적인 유대를 초월하는 영광스런 존재'로 서술하고 싶다는 것을 의미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결코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 체험은 너무 강렬했고 그래서 나의 삶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나는 모든 것이 순간적임을, 오직 변이일 뿐임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그 어떤 것도 옹호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그 어떤 것도 붙잡고 있을 수 없습니다. (있음에서 함으로 181)
T.
어떻게 무아를 이룰 것인가?
응무소주이생기심
어떤 사람의 진정한 지혜는 영속적인 자기 고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찰의 역량에, (특정한 상황들을 정확하게 지각해내는 것을 방해하는) 이러저러한 신념들을 기꺼이 버릴 수 있는 자발성에 있다는 것이 내 견해입니다. 현명한 사람은 늘 자기 자신을 관찰하지 않습니다. 또한 그들은 자신들이나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해야만 하는가를 지시하고 있는 궁극적 진리에 인도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 움베르또 마뚜라나, <있음에서 함으로>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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