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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길다의 실체는 길다에 없다.
길다는 짧다와 상대하여 길다.
한 막대기는 긴 것도 아니고 짧은 것도 아니다.
<금강경>식으로 표현하면,
길다라고 하나 길다가 아니므로 그 이름이 길다이다.

2.

잘생김의 실체는 잘생김에 없다.
잘생김은 차이에서 나온다.
한 사람을 잘생겼다고 말할 때 잘생긴 게 아니므로 잘 생겼다고 할 뿐이다.

3.

나의 실체는 나에게 없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의 구분, 차이에서 출현한다.
나라고 하지만 나라는 실체가 따로 없으므로 그 이름을 나라고 할 뿐이다.

4.

사물의 실체는 그 사물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고[우리는 이렇게 알기 쉬우나] 사물들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만일 차이가 없어진다면 그 이름은 사라질 것이다.

5.

길다는 그 자체로 없으나 길다의 작용은 분명(원인과 결과를 만든다)하다. 길다는 무아다. 이렇게 관觀할 때 '잘생김'도, '나'도 무아로 관한다. 무아로 관한다는 것은 환상처럼보는 것이다. 환상에 사로잡혀 해로운 마음을 만들지 않고 실제적인 작용은 향유한다. 실체 없는 환상과의 동일시가 허무한 집착이다. 이는 독립된 실체가 있는 줄 잘못 알기 때문이다.

"나는 사물들에 대한 집착을 그만두었고 내 자신을 그것들과 부당하게 동일시했던 것을 그만두었습니다." (있음에서 함으로 181)

6.

나는 허영, 피상성, 질투, 확실성의 유혹들이, 당신이 더 잘 알려지고 갑자기 다른 사람들의 칭송을 받게 될 때 직접적으로 작동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어쩌면 당신은 아부하는 속성들의 목록을 믿기 시작하고 그에 따라 행동할지도 모릅니다. 특별한 누군가로 간주되는 것은 사로잡힘의 한 형태입니다. 더욱이 다른 사람들이 뭐라뭐라하는 속성들을 자신의 뛰어난 자질들과 동일시하는 사람들은 내가 볼 때 맹목적으로 보입니다. 다른 누군가가 내 안에서 보는 것 - 그것은 결코 내 자신이 아닙니다. 그것은 결코 내 자신의 인성이 아닙니다. (있음에서 함으로 314)

7.

무아를 관觀한다는 것에 주목하자. 차이를 생성하는 것은 그 구분을 하기위해 구분할 수 있도록 연결되어야만 가능하다.

흔들리는 깃발을 어떻게 아는가?
내가 보니까?
아~

나의 신체, 나의 신경계가 산출하는 차이의 구분은 나에게서 나오며 내가 만드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이를테면 일체유심조.

흔들리는 것은 깃발이 아니라 마음이다.

8.

이런 종류의 실험들은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것의 핵심을 잘 보여준다. 이것들은 우리의 경험이 우리의 구조와 뗄 수 없게 얽혀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세계의 '공간'을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시야를 체험하는 것이다. 우리는 세계의 '색깔'을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색채공간을 체험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의심의 여지없이 한 세계 안에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가 이 세계를 인식하게 되는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 세계가 우리에게 어떻게 나타나는가라는 문제는 우리의 생물학적, 사회적 행위의 역사와 떼놓을 수 없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것은 너무나도 뚜렷하고 당연해서 오히려 깨닫기가 매우 어렵다. (앎의 나무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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