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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수보리여! 여래는 모든 것을 다 알고 모든 것을 다 보나니 이 경전의 가르침을 믿는 중생들은 한량없는 복을 얻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중생은 나라는 망상, 사람이라는 분별, 중생이라는 망상, 존재라는 분별의 찌꺼기가 조금도 남아 있지 않으며 또한 진리 아닌 것에 대한 집착도 조금도 남아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진리마저도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마음을 무언가에 집착하면 곧 자기, 사람, 중생, 혹은 존재에 대한 망상에 걸리게 되기 때문이다. 만일 진리라 할지라도 집착한다면 곧 자기, 사람, 중생, 존재에 대한 망상에 빠지게 되고 진리 아닌 것에 집착할지라도 자기, 사람, 중생, 존재의 덫에 걸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진리를 취하지도 말고 진리 아닌 것 또한 취하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여래는 항상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다. 그대들은 나의 설법을 비유컨대 강을 건너는 뗏목으로 알고 강을 건넜으면 응당 뗏목을 버려야 할 것이다. 진리마저도 버려야 하거늘 하물며 진리 아닌 것이야 두말할 나위도 없지 않은가!
<금강경 6 정신회유분>

2.

이런 의미에서 저는 진리에 대한 생각을 사라지게 해야하고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끝장을 내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거론되지 않도록 해라!'(발명품 49)

제 목표는 오히려 진리개념을 사라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진리개념의 사용은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그 개념은 거짓말을 만들어 내고 사람들을 옳은 사람과 옳지 않은 사람으로 갈라놓게 됩니다. 그래서 제가 진리란 거짓말쟁이의 발명품이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43)

그것은 우상숭배의 문제이며 어떤 가르침 혹은 특정 인물에게 스스로를 종속시킴으로써 자신의 책임을 벗어버리려는 시도입니다. 그런 것은 우리가 지금 얘기하고 있는 낙담 혹은 실망의 끝이자 자신의 길을 의식하는 노력의 끝입니다. 물론 우상이나 지도자 혹은 위대한 사상에 매달리는 게 훨씬 편하겠지요. 더 이상 머리를 쓸 필요도 없고 자신을 세상에 완전히 내 맞길 수도 있으니까요. 저의 가르침은, 이 말을 덧붙이고 싶은데, 우리는 어떤 가르침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역설적이지만 매우 역동적인 역설입니다. 언젠가 어떤 강연에서 저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신사숙녀 여러분, 제가 지금부터 여러분에게 얘기하게 될 것중에 어느 하나도 믿지 마십시오!" 모두들 웃고는 저를 믿지 않아야 한다는 제 말을 믿었습니다. 사실 저는 정말로 진지하게 얘기를 했던 것인데요. (발명품 260)

3.

"수보리여! 그대는 여래가 ''내가 마땅히 말한 바 법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하지 마라. 그렇게 생각하지 말지니, 왜냐하면 만일 어떤 사람이 '여래깨서 설한 바 법이 있다'고 한다면 이는 곧 부처를 비방하는 것이니, 내가 말한 바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수보리여! 법을 말한다는 것은 법을 가히 말할 수 없는지라 이 이름이 법을 말함이니라."

<금강경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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