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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식은 지천에 깔렸는데 다만 보지 못할 뿐이라고 하는데, 정말 그렇구나. 매번 보는 글인데도 보이지가 않았다.

쾌락이 욕망의 내재적 과정을 중단한다고 생각했는데, 욕망은 쾌락 속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음을 깨닫는다.

이를 잊지 않기 위해 길지만 깊이 감사하며 글 전체를 인용한다. 인용하는 책은 법륜스님의 <깨달음>(정토출판, 2012)이다.

 

세상을 물들이는 사람.

 

첫 번째와 두 번째, 그리고 세 번째 부류의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첫 번째 부류는 바다에 빠지고 싶지 않은데 빠져서 괴로운 사람이고, 두 번째 부류는 바다에 빠지지 않기 위해 방파제를 쌓아놓고 그 안에서 노니는 사람이고, 세 번째 부류는 그 배를 타고 자유로이 놀면서 바다에 빠지지 않는 사람이다. 이 세 부류 사람들 모두 바다에 빠지지 않는 것을 행복으로 여긴다. 행복하기 위해 바다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다.

네 번째 부류는 어떤 사람일까? 네 번째 부류의 사람은 '바다에 빠지면 안 된다'는 생각이 없다. 즉 바다에 빠져도 좋다는 거다. 앞의 세 사람은 바닷물에 빠지지 않아야 행복하다는 생각에 갇혀 있는데, 네 번째 사람은 물에 빠져도 좋고 빠지지 않아도 좋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바다에 빠지면 어떻게 하는가? 바다에 빠진 김에 진주조개를 주워 온다.

해녀는 전복이나 해삼을 따러 바다 속으로 들어간다. 모험가들은 해저에 가라앉은 보물선을 찾으러 바다에 들어간다. 해녀나 모험가는 바다에 들어가지만 바다에 빠진 게 아니라 자기 볼일 보러 스스로 들어간 거다.

네 번째 사람은 배를 타고 바다 위를 노니다가 어쩌다 바다에 빠지면, 빠진 김에 진주조개를 주워 온다. 그러니 바다에 빠지더라도 그에게는 그것이 괴로움을 주는 시간이 되지 않는다. 자기 볼일 보러 일부러 바다에 뛰어들기도 하는데, 이와 빠진 김에 조개를 주어 오면 된다. 그러니 네 번째 부류의 사람은 바다에 빠지면 빠져서 좋고, 바다에 빠지지 않으면 빠지지 않아서 좋다. 빠지든 빠지지 않든 그 모두로부터 자유롭다.

말하자면 첫 번째 사람은 어떤 일을 할 때 실수하지 말아야지 하는데 번번이 실수하는 수준이고, 두 번째 사람은 실수하지 않기 위해 아무 일도 안하는 수준이며, 세번째 사람은 뭘해도 실수를 안하는 수준이다.

그런데 네 번째 사람은 실수를 해도 상관없고 안 해도 상관없다. 왜냐하면 실수를 하면 오히려 그 실수를 통해 더 큰 배움을 얻고 깨달음을 얻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에게 있어 실수나 잘못은 오히려 복이 된다. 즉, 전화위복이라는 것이다. 이 네 번째 단계를 알아야만 부처의 경지인 해탈의 의미를 알 수 있다.

그런데 네 번째 부류는 다른 사람이 알아보기가 어렵다. 첫 번째 부류의 사람과 구분이 잘 안 된다. 두 번째 부류는 첫 번째 부류와 뚜렷하게 구분되고, 세 번째 부류는 첫 번째 부류와 어울려 있어서 구분이 잘 안 되지만 가만히 관찰해 보면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세 번째 부류의 사람은 비범해 보인다. 누가 욕을 해도 화내지 않고, 술자리에 같이 어울려도 술을 마시지 않고, 친구처럼 같이 지내도 뭔가 특이하고 비범하다. 그러나 네 번째 부류의 사람은 첫 번째 사람과 똑같이 어울려 술도 마시고 노니까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차릴 수가 없다.

다시 비유를 들어 설명하면, 두 번째 부류의 사람은 술꾼을 친구로 삼지 않고, 세 번째 사람은 술꾼과 친구는 하되 자기는 술을 마시지 않는데, 네 번째 사람은 술꾼과 같이 어울려 술을 마신다. 그러니 술꾼과 구분이 안 된다.

하지만 그렇게 어울려 지내다 보면 어느새 술꾼 친구가 술을 마시지 않게 된다. 욕하는 사람과 같이 살면서도 나는 욕하지 않는다는 수준이 아니라, 욕하는 사람과 같이 욕하면서 살더니 같이 살던 사람이 욕을 안 하게 된다는 거다. 욕심 많은 사람들과 어울려 살았는데 같이 살던 사람들이 욕심을 내지 않게 되고, 나쁜 짓을 하는 사람들과 어울려 한 참 돌아다녔는데 나중에 보니 어울리던 사람들이 다 착하게 바뀌어버린다.

이렇게 네 번째 부류는 물들이는 사람이다. 물들까 봐 겁내지 않고, 물들지 않는 걸 능사로 여기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세상을 아름답게 물들이는 사람이다. 자기를 더럽혀서 더러운 때를 닦어내는 걸레처럼 스스로 걸레가 되어 세상을 깨끗하게 만들어버리는 사람이다.

 

천민, 창녀, 연쇄살인마마저도 겁내지 않고 함께하신 부처님이 바로 세상을 물들이는 사람으로 산 분이 아닌가.

죽어서도 세상을 물들이고 있으니 그 공덕이 한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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