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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세의 고원들

잡설

T1000.0 2012. 9. 13. 13:10

1.

대상을 본다는 것은 상을 본다는 것이다.

그 상은 마음이 짓는 것이다.

그 상이 마음 밖의 존재[대상]에 있는 것이 아니므로

그 상과 마음은 하나이다.

상을 고집한다는 것은 곧 마음을 고집한다는 것이다.

즉 주체와 대상은 하나다. 존재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사물은 그저 사물일 뿐이다.

상을 짓거나 거부하는 것은 인간의 영역, 마음이다.

존재를 말할 수 있는 자 누구인가?라고 물어라.

 

2.

마음은 신체의 관념이다. 이 관념이 상인데,

상은 오온과 12처와 18계가 원인과 결과를 이루며 굴러 생기는 결과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이 어떤 질서로 구르는지 모른다.

우리는 그 굴림의 결과만을 의식한다.

그런데 우리는 결과인 의식을 원인으로 착각한다.

내가 의식한다, 내가 원한다, 내가 한다, 내가 있다고 생각한다.

즉 전도몽상. 원인과 결과가 전도된채 눈을 뜨고 꿈을 꾸고 있다. 

 

3.

우리는 오온과 12처와 18계의 내용들이 어떤 질서로 구르는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이 모른다는 알 수 있다.

이 모른다가 진짜 나이며, 나의 원천인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누구인가? 이 모른다가 바로 나의 자성이며

이런 나의 자성을 보았을 때 비로소 자성에 메이지 않는 자유가 가능해진다.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는" 자유가.)

자성은 청정하다. 자성은 있는 그대로의 공이며 완전하다.

자성은 필연성에 의해 질서지어진다. 즉 얻을 것도 잃을 것도 없다.

자성, 즉 모른다는 원인들의 무한한 연쇄다.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인연들과 인연들의 무한한 연쇄. 

[당연히 의식하지 못한다. 앞서 말했듯이 의식은 결과만을 의식한다.

따라서 의식은 결과에서 결과로의 이행만을 의식한다.

한마디로 의식은 흐름이다. 이 점은,

흐르는 물을 아무도 붙잡지 않는 것처럼

의식에(또는 생각에) 집착하지 말하야할 분명한 이유다.] 

모든 인연들의 연결과 배치가 바로 나의 자성이다.

따라서 나는 인연들의 배치일 뿐,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라고 할 것이 없다. 즉, 무아(無我).

이뿐이 아니다. 세계가 다 이처럼 인연들의 배치이며

배치들의 변화무상함이다. 세계는 무아의 세계다.

 

4.

자성을 본다고할 때 무엇이 보는가? 이 관찰자를 이성이라 하자.

이성은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그것으로 모든 게 충분하다.

"지혜는 없고 또 얻을 것도 없다." 

있는 그대로의 완전함을 깨닫는 것.

 

5.

이제 할 일은

있는 그대로 완전하다를, 실천해 보이는 것.

삶으로 사는 것. 보여주는 것이다.

이 완전한 행복을 모두가 누리도록. 

 

6.

욕망은 청정하다.

욕망은 공하다.

욕망에 어떤 상도 짓지 말고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고] 

욕망이 중단되지 않도록 조심하며  

욕망의 내재적 과정을 중단시키는 쾌락을 멀리하며

한발도 물러섬이 없이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다만 할 뿐으로

공덕을 쌓으면,

임계점에 이르러 죽순처럼 솟아오르고

복리의 마술보다 더 어마어마어마한 

겐지스강의 모래알 만큼의 겐지스 강의 모래알같은

복을 누리고 누리게 될 터이니.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이 지복을 어찌 보지 못하는가!

 

 

 

 

 

 

 

 

 

 

**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고"에 대한 주석.

자성은 욕망한다. 욕망이 인연의 배치이기 때문이다. 욕망은 결여가 아니라 인연의 배치라는 것을 바로 알자.

욕망이 일어나는 것은 어떤 결핍으로인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일어날 인연을 따르는 욕망의 배치에서 생성되는 결과이다. 예컨대 콩 심은데 콩이 나는 것이다. 콩이 나는 인연의 배치가 콩을 나게 한 것이지 콩이 어떤 결핍을 채우기위해 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콩씨가 땅과 비와 거름과 인연의 배치를 이룰 때 콩이 나듯이 욕망의 생성도 이와 다를 게 없다. 욕망은 인연의 배치다. 자성이 욕망하는 이유는 이미 자성이 인연들의 무한한 연쇄인 인연의 배치이기 때문이다. 콩씨안에, 즉 콩의 유전자가 콩의 인연을 내재하고 있듯이. 그러므로 자성은 욕망의 배치이다. 또한 자성이 어떤 결여도 포함하지 않듯이 욕망 또한 어떤 결핍도 내재하지 않는다. 만일 욕망이 본래 결여를 내포한다면, 욕망에 무조건 메여있는 것이 되어 욕망으로부터의 자유는 불가능하다. 욕망에 메이는 것은 물론이고 메이지 않겠다는 의지도 메여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욕망이 배치인 줄 알면 욕망에 메이거나, 메이지 않을 어떤 이유도 없다. 욕망은 욕망일 뿐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낼" 수 있는 것이다. 이를 고쳐말하면 욕망에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은, 욕망을 절단할지 흐르게 할지 인연을 따라 이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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