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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세의 고원들

호강

T1000.0 2012. 9. 17. 05:34

"그래 보살을 누가 보았다더냐?"

"물 얻어먹으러 절에를 들어갔더니 중들이 서로 지껄입디다.

서울서 온 유명한 중이 보살에게 혼이 났다고."

"그래 보살이 어떻게 생겼더라고 말하더냐?"

"그 보살은 늙은 중이고 보살이 데리고 온 제자는 상투한 사람 모양인데, 그 얼굴들에서 붉고 푸르고 한 빛이 뻗치어 나오더랍디다."

하고 천왕둥이가 지껄이는데, 꺽정이는 대사를 돌아보며 웃고 있었다.

저녁상을 치운 뒤에 덕순이가 대사를 돌아보며 보우는 전고에 드믄 요승이라고 말하고

"그자의 말로가 어떻게 될까요? 선생님은 짐작이 없지 않으실터이지?"

하고 물으니 대사는 빙그레 웃으며 대답이 없었다. 덕순이가 얼마 동안 그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가

"그래 그자가 제명에 죽겠소?"

하고 다시 물으니 대사가 말이 없이 머리를 가로 흔들었다.

"능지처참을 당하겠소?"

"글쎄요."

"말을 좀 분명히 하시구려."

"그까짓 것은 분명히 알아 무엇하시오?"

하고 대사가 말을 자르려고 하는데 꺽정이가

"중놈으로 그만큼 호강하면 이다음에 제명에 못 죽어도 좋지요."

하고 말하니 대사는 잠깐 눈살을 찌푸리며

"보우가 다음날 혹독한 형장 아래에 맞아죽을 것을 미리 안다면 지금 호강이 맘에 좋을 것 없으리."

하고 말하였다.

 

홍명희선생의 <임꺽정> 양반편(p322)에 나오는 대목.

보우만큼의 호강은 아니더라도, 일상에서 크고 작은 호강의 유혹은 끊이질 않는데,

유혹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 병해대사가 보우를 들어하는 말을 마음에 새긴다.

* 쥐에게 호강은 화려한 공짜 음식이 아니겠는가, 이 호강을 쥐약이 든 줄도 모르고 덥석 문다면 보우처럼 과보를 받아할 것인데, 우리 일상에서 쥐약은 대출이다. 대출은 조심하여 받지 않는 것이 최선이며, 받더래도 한시라도 빨리 뱃어내야지 안그러면 큰 탈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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