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예를 들어 탁자는 존재하기 위해 그것의 부분들의 의존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부분들을 탁자를 구성하는 기초라고 부릅니다. 우리 마음속에서 탁자를 찾으려면 다리나 상판 등과 같은 기초 안에서 탁자를 찾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 부분들 중 어느 것도 탁자가 아닙니다. 탁자가 아닌 이것들이 생각에 의존하여 탁자가 되는 것입니다. 탁자는 스스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탁자는 의존적으로 생겨나거나 존재하는 것입니다.
1.탁자는 어떤 '원인'에 의존합니다. 2.탁자는 그것의 '부분'들에 의존합니다. 3.탁자는 '생각'에 의존합니다. 이것이 연기의 세가지 방식입니다. 물론 이 중에서 좀 더 중요한 요소는 대상을 규정 짓는 '생각'입니다.
생각에 의존하여 존재한다는 것은 연기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물리학자들은 현상이 객관적으로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관찰자와의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한 바 있습니다.
예를 들면, 달라이 라마의 '나'는 내 몸이 있는 이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다른 곳에서는 그것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이는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 자리를 살펴본다고 해서 스스로 존재하는 '나'를 발견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라이 라마는 먹고 마시고 말하고 잠을 자는 남자이고 승려이며 티베트인입니다. 이는 '나'라는 것이 발견되지는 않지만 확실히 존재하고 있다는 충분한 증거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나'라는 것을 발견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요? '나'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존재하는데도 찾을 수는 없을 때, 우리는 그것이 생각에 의존하여 존재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밖에 다른 방식은 가정할 수 없습니다.
(마음 길들이기 73) [이점에 관해서는 마뚜라나 <앎의 나무>나 <았음에서 함으로>참조]
1.탁자는 어떤 '원인'에 의존합니다. 2.탁자는 그것의 '부분'들에 의존합니다. 3.탁자는 '생각'에 의존합니다. 이것이 연기의 세가지 방식입니다. 물론 이 중에서 좀 더 중요한 요소는 대상을 규정 짓는 '생각'입니다.
생각에 의존하여 존재한다는 것은 연기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물리학자들은 현상이 객관적으로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관찰자와의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한 바 있습니다.
예를 들면, 달라이 라마의 '나'는 내 몸이 있는 이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다른 곳에서는 그것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이는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 자리를 살펴본다고 해서 스스로 존재하는 '나'를 발견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라이 라마는 먹고 마시고 말하고 잠을 자는 남자이고 승려이며 티베트인입니다. 이는 '나'라는 것이 발견되지는 않지만 확실히 존재하고 있다는 충분한 증거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나'라는 것을 발견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요? '나'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존재하는데도 찾을 수는 없을 때, 우리는 그것이 생각에 의존하여 존재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밖에 다른 방식은 가정할 수 없습니다.
(마음 길들이기 73) [이점에 관해서는 마뚜라나 <앎의 나무>나 <았음에서 함으로>참조]
'성찰2019'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지로 인해 윤회를 되풀이 (0) | 2019.11.15 |
---|---|
사로잡힘 (0) | 2019.11.14 |
예쁨에 대한 고찰 (0) | 2019.10.29 |
< 색즉시공 공즉시색 > (0) | 2019.10.27 |
무상과 공, 그리고 인과: 기쁨의 윤리학 (0) | 2019.10.2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