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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왜 그렇습니까? 뭐가 유아론적입니까? 당신은 저와 마주앉아 있고 우리는 서로 대화를 하고 있으며 우리는 심지어 악수를 하기도 합니다. 이것들은 결코 환상이 아니며 결코 가공물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내가 외적 실재를 받아들인다는 말이 아니냐고 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닙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내 목소리를 듣고 나와 악수하고 그리고 여러 가지 느낌들의 지속적인 상호연관을 통해서 당신은 하인츠를 구성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인츠 폰 푀르스터에 대해서 그리고 베른하르트 푀르크센에 대해서 말할 수 있기 위해서 우리는 실재라고 표현하는 어떤 연결고리를 발명해 냅니다. 유아론자들은 그들이 홀로 있음을, 그리고 완전히 고립되어 있음을 주장하고 타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다른 어떤 것도 없다고 주장합니다. (발명품 37)
2.
한 사람의 유아론자가 다른 유아론자를 생각할 수 있고, 그 다른 유아론자는 또 다른 유아론자를 떠 올릴 수 있다. 솔직히 말해서 저는 이런 방식으로 어떻게 유아론에 대한 비난이 정당화될 수 있는지 모르겠군요.
내 친구인 고든 패스크가 한번은 그런 상황을 표현하는 아주 멋진 그림을 그렸습니다. 한 사람이 스스로 홀로 있다고 주장하는 중절모를 쓴 어떤 사람을 봅니다. 그리고 그 중절모를 쓴 사람은 마찬가지로 중절모를 쓰고 있는 또 다른 사람을 머리속에 떠 올리는데 그 사람 역시도 자기가 상상하는 다른 사람은 존재하지 않나다고, 자신의 상상력의 구성물이 있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우리의 생각속에서는 다음과 같은 경우가 생겨날 수 있습니다. 유아론적으로 사고하는 한 사람이 마찬가지의 견해를 갖고 있는 다른 사람을 만난다.
누가 옳은가, 첫번째 유아론자인가 아니면 두 번째 유아론자인가 하는 물음이 제기되는 군요.
이게 도약지점입니다. 저는 그런 사실을 계속 설명하기 위해서 소위 상대성 원리를 말하고자 합니다. 상대성원리에 따르면 a에게도 b에게도 옳은 하나의 가설은 그것이 a와 b에게 한꺼번에 타당할 경우에만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가령 태양이 우주의 중심인가 아니면 지구가 우주의 중심인가라는 물음을 생각해봅시다. 금성에도 지구에도 자신의 행성이 중심에 있다는 가설을 다투는 존재가 있다고 상상할 수 있을 겁니다. 지구인과 금성인이 만나게 되는 순간 그들은 다투고 전쟁을 시작하게 될 겁니다. 누가 옳은가요? 누가 진리의 소유자입니까? 이 다툼을 조정하기 위해서 상대성원리를 사용할 수 있겠지요. 우리는 지구인에게도 금성인에게도 그들이 만약 (둘 다에게 타당해야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상대성원리를 수용한다면 그들 모두 맞지 않음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상대성원리는 그러니까 옳고 그름이 아니고 사람들이 그것을 받아들이느냐 아니냐의 문제인 것입니다. 그것은 각자가 내려야할 결정의 문제인 것입니다. 금성인과 지구인은 이제 태양중심주의자가 되기로 그래서 태양을 우주의 중심으로 보기로 결정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이런 방법으로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되며 화성인과도 평화롭게 살 수 있습니다. (발명품 38)
T.
이른바 구성주의는 존재론과 유아론 너머의 중도.
존재론은 상주론, 유아론은 단멸론에 대비되고 구성주의적 관점은 관찰자가 구성하는 '작용'의 관점에서 유아론과 존재론의 양극단을 피한다.
"연기와 공의 균형을 맞추려면 '고정된 실체로 스스로 존재하는 것'과 '연기적으로 존재하는 것'의 차이를 구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고정된 실체로 존재하지 않는 것'과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의 차이를 아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불교의 위대한 현자들이 공의 원리를 가르칠 때 '현상이 작용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하지 않은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그들은 현상은 연기에 따라 일어나기 때문에 고정불변한 실체가 없다고, 즉 자성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공을 이해하면 양극단[상주론과 단멸론]을 모두 피할 수 있습니다. 공을 깨달음으로써 현상이 고정된 실체로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극단을 피할 수 있고, 현상이 연기에 따라 일어나는 것을 이해함으로써 현상의 작용을 부인하고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극단을 피할 수 있습니다." (마음 길들이기 79)
내 보기에 '연기'와 '구성'은 같은 맥락으로 여겨지는데 단 '구성'이란 말에서 '유식'처럼 관찰자를 전제하는 뉘앙스가 배여있다는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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