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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의 힘

T1000.0 2022. 2. 27. 23:49

데이비드 프리드버그의 <이미지의 힘>을 읽어보셨습니까? 아주 훌륭한 책입니다. 그 책의 제1장 첫 문단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림과 조각에서 성적인 자극을 받는다. 그래서 그들은 그림과 조각을 부수거나 훼손하고, 입맞춤하기도 하며, 그 앞에서 울부짖고, 그것들을 향해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또 그것들 때문에 마음이 진정되거나 동요되기도 하며 저항하도록 선동받기도 한다. 사람들은 그것들을 통해 감사를 표하고, 고양되기를 기대하며, 감동을 받아 가장 극대화된 공감과 두려움을 느낀다."

요점은 이 모든 것이 과거의 일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미지의 영향력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이미지는 항상 강력했고 앞으로도 늘 그럴 것입니다. 만약 '미술계'가 이미지에서 멀어진다면 미술계는 주류에서 벗어난 활동이 될것입니다. 다시 말해 힘은 이미지와 함께 있을 것입니다.

과거에는 그랬다고 믿는 편이 더 쉬울 것 같습니다.

귀스타브 플로베르가 쓴 한 하녀에 대한 이야기인 '순박한 마음'을 아십니까? 그 글은 <세가지 이야기>안에 들어 있습니다. 플로베르 글 속에 등장하는 하녀는 노르망디의 시골에 살았는데, 어떤 책에서 본 이미지 하나가 그가 지금까지 본 이미지의 전부였습니다.
이는 1870년대나 그 무렵의 이야기였을 것입니다. 나는 그당시 작은 시골 마을에 살던 사람은 단 한 권의 책만을 보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녀가 보았을 다른 이미지들은 교회 안에 있는 것뿐이었을 겁니다. 지금껏 보아온 이미지가 고작 4~5개뿐이라면 그 이미지들은 그녀의 머리에 아주 강렬하게 자리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을까요?

맞습니다. 만약 당신이 1460년에 아레초에 살고 있었다면,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프레스코화에서 현대의 관광객들보다 훨씬 더 큰, 엄청난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엄청난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시칠리아의 몬레알레 대성당에 가본 적이 있습니까? 그곳의 모자이크화는 오늘날 보아도 장관이지만 1200년에는 틀림없이 기막힌 장관이었을 것입니다.
해가 뒤편의 금으로 만든 제단을 비출 때 그곳에 가면, 자연이 지배적이었던 세계에서 그 무엇보다도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가장 자연스럽지 않은 이미지를 보게 되었을 것입니다.
당시에는 해가 지면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인공조명은 없었습니다. 우리는 오늘날 그 모자이크화를 미술로 생각하지만 당시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매우 생생하게 재현된 과거를 보았습니다. 그것은 곧 사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떻습니까?

TV나 대중매체가 사람들로 하여금 다른 이들이 어떻게 사는지 볼 수 있게 만들어 20세기에 사회적인 변화를 일으켰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패쇄적인 공동체 안에 속에 있어서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모르고 있다면, 어떤 이에 관심을 갖거나 어떤 일을 하려 들겠습니까? 예전에는 그랬습니다. 그러지 않은가요? 소작농들은 저 웅장한 집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 집을 보여주는 작은그림을 집에서 보게 된 순간 사람들은 "저 사람들은 더 잘 살고 있는데, 왜 우리는 더 잘 살 수 없는 것일까?"하고 생각할 겁니다.
사진, 영화, TV, 아이패드, 어떤 것이든 우리 모두는 자연에 대한 광학적 투사에 매력을 느낍니다. 그것은 가장 '현실적인' 그림으로 보입니다. 그렇습니다. 몇 가지 질문을 던지기 전까지 우리는 세계가 그와 같다고 동의하거나 또는 어쨌든 그것과 거의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후에 우리는 의심을 품게 될지도 모릅니다.

보고 있는 것의 사실성을 말하는 것입니까?

사진은 실제 현실을 우리 앞에 제시한다고 주장하고 싶겠지만 분명히 그렇지 않습니다. 사진은 일찍부터 분쟁의 현장을 재현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진가들이 촬영할 수 있기만 하다면 말입니다.(에를 들면 외젠 아페르의 1890년 파리 코민 봉기의 이미지). 누가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카메라맨이 어디에 있었는가, 같은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면 알 수 없을 것입니다.
아주 화난 얼굴을 하고 있는 북아일랜드의 어린 소년을 찍은 유명한 사진이 있습니다. 그 사진을 보면 '세상에, 북아일랜드 사람들이 매우 화가 났구나'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 다음 그 장소에  서 있는 그 소년을 찍은 또 다른 사진이 나타나는데, 대략 12명의 사진가들이 그 소년 앞에 일렬로 늘어서 있습니다. 그 사진은 보는 이에게 그 장면에 대해 아주 다른 생각을 갖게 합니다. 즉 그 모든 것이 연기였던 것입니다.

많은 보도사진이 실상 사실이라기 보다 드라마, 즉 이야기를 말하는 옛 그림들과 같은 것이라는 뜻입니까?

또 다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습격받은 다음 날 아침, 완전히 페허가 된 런던을 찍은 유명한 사진이 있습니다. 그 사진에서 한 우유 배달우너이 그 페허 위를 걸어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람들에게 흥분하지 말고 하던 일을 계속 하라고 이야기하기 위해 찍은 1941년의 사진입니다. 그러나 사진 속 인물은 우유 배달원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그 사진가의 조수였습니다. 그는 그저 우유 배달원의 외투를 걸쳤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사진이 조작된 것이라고 말하겠지만 그 당시 그 사진은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즉 "하던 일을 계속하자"라고 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 회화였다면 그 모델이 실제 우유 배달원인지 여부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와 같이 매체와 기술이 어떤 종류의 그림이 만들어질 수 있는지를 좌우합니다.

정확합니다. 수전 손택은 전쟁 사진에 대한 그녀의 책인 <타인의 고통>에서 미국 남북전쟁 사진가인 매슈 브래디가 사진을 찍기 위해 주변의 시체들의 위치를 옮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충격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나는 그녀가 아주 육중해서 움직일 수 없는 카메라의 시대에 라이카의 세계를 강요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그것은 매우 어리석은 생각이라고 봅니다. 당시의 예술가들이 부피가 큰 카메라 대신 대상의 위치를 옮긴 것ㅇ느 당연합니다. 그 편이 더 수월하니까요. 브래디는 다른 사진가들이 했던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움직이는 이미지에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인간은 자연의 광학적 투사에 깊은 영향을 받는 것이 분명합니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여전히 그것에 마음을 뺏깁니다. 바로 TV화면이 그렇습니다. 카메라 웁스큐라에 대한 글을 쓴 최초의 저자들 가운데 한 명인 지암바티스타 데랄 포스타는 1580년경에 짮은 영화 쇼라고 할 수 있는 것을 무대에 올렸습니다.
그는 렌즈와 그의 친구가 앉아 있는 어두운 영화에 사용했는데, 밖에는 분장을 하건 ㅏ나무나 기둥으로 변장한 배우들을 세워두었습니다. 배우들의 동작은 밖에서 들어오는 밝ㅇ느 빛을 받아 어두운 방의 벽에 비쳐졌습니다. 그것은 색이 있었고 움직였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면에서 보자면 그는 최초의 영화를 상영했던 것입니다.
20세기에는 유사한 공연이 사진들, 곧 영화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교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였습니다. 사람들은 이미지를 보기 위해 영화관에 갔습니다. 반면 이전에는, 실제로 1900년까지는 이미지를 보기 위해 교회에 갔을 것입니다. 에를 들면 브레드퍼드에 있는 미술관이자 전시장인 카트라이트기념관은 1904년에 개관했습니다. 만약 그곳이 개관하지 않았더라면 그 소도시 전체에서 이미지를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은 광고판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마도 최초의 영화관이 몇 년 후에 문을 열었을 것입니다. 25년 후 내가 그곳에서 자라고 있을 때는 많은 영화관들이 있었습니다.
대중매체는 세계 최초로 전 세계적인 스타들을 탄생시켰습니다. 찰리 채플린은 영화 덕분에 빠른 속도로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는 집 안에 머물며 TV를 통해 이미지르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각자의 아이패드나 노트북 컴퓨터에서 이미지를 볼 수 있습니다. 갑자기 우리는 전혀 모르는 미지의 영역으로 옮겨 가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은 TV를 거의 보지 않습니다.
대신 그들은 자신이 직접 짧은 영상물을 만들어 페이스북을 통해 친구에게 보냅니다. 그리고 짧은 노래를 직접 만들어 친구들에게 보내기도 합니다. 오늘날의 아기들은 스타 없이 자란 첫 세대가 될지도 모릅니다.

그리 비극적이지는 않군요.

보다 더 심오한 측면은 공유딘 경험에 대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에는 이미지의 주요 공급자가 교회였습니다. 종교 기관들이 공공의 구경거리인 건축과 종교의식을 제공해주었습니다. 그 후 교회는 서서히 그 사회적 권위를 잃었습니다. 그 뒤로 이미지는 매체라고 알려진 것을 통해 배포되었습니다. 신문계의 거물, 영하사 소유주, 기자, 그리고 영화의 TV 프로그램 감독이 이 모든 사람들이 보는 이미지를 지배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또 다른 엄청난 변화를 목도하고 있습니다. 그 오래된 이미지 배포자들이 권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이미지를 만드는, 그리고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이미지를 배포하는 새로운 기술이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지난 일요일 배달된 네 개의 신문, <선데이 텔레그라프>, <선데이 타임스>, <옵저버>,<메일 온 선데이>를 받아보았습니다. 그 신문들이 바닥에 떨어져 있는 모양새를 사진으로 촬영한 다음 무게를 측정했습니다. 총 3킬로그램이었습니다. 그 신문들을 브리들링턴으로 운송한 다음, 집까지 날라야 합니다. 그러므로 휴대용 컴퓨터가 승리하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종이 신문을 사라지게 할 것입니다. 기술이 대중매체를 도입했지만 이제는 그것을 제거하고 있습니다. 다른 어떤 것도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다시 그림이다. 20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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