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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먼저 여러분이 나와 함께 작은 실험에 동참했으면 좋겠다. 손을 들어 대답해주길 바란다. 여러분이 나를 본다는 사실에 여러분 중 몇 명이 동의하는가? 많은 사람이 손을 드는데 --- 이와 같이 광기는 군중을 좋아하는 것 같다. 물론 여러분은 '정말로' 나를 보지는 않는다. 여러분이 '보는' 것은 나에 관한 한 묶음의 정보이며, 이것을 종합하여 여러분은 나의 모습에 대한 이미지를 합성한다. 여러분이 그 이미지를 만든다. 그렇게 간단하다.
'나는 너를 본다'나 '너는 나를 본다'라는 명제는 내가 '인식론'이라고 부르는 것을 안고 있는 명제다. 그 속에는 어떻게 우리가 정보를 얻으며, 그것이 어떤 종류의 정보인가와 같은 가정들이 포함되어 있다. 여러분이 나를 '본다'고 말하면서 순진하게 손을 들 때 여러분은 사실 앎의 본질과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의 본질에 대한 명제, 그리고 우리가 그것에 대해 어떻게 아는가라는 명제에 동의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비록 이 명제들을 공유하기는 하지만, 이 명제들 중 상당수가 공교롭게도 거짓임을 나는 주장할 것이다. 그와 같은 인식론적 명제들의 경우, 오류는 쉽게 발견되지 않으며 신속하게 바로 처벌받지도 않는다. 매우 심각한 오류가 있음에도 불규하고, 여러분과 나는 세상에서 함게 친하게 지내며, 하와이로 날아가 정신의학에 관한 논문을 읽고, 이 탁자 주위에 자리 잡고 앉아 인간으로서 대체로 분별있게 활동한다. 사실, 잘못된 전제들로 작용한다. (마음의 생태학 718)

2.
[에임스 실험] 이 효과는 아주 간단하게 달성된다. 여러분이 판자를 밀었을 때, 사실은 여러분이 보지 못한 탁자 밑의 레버를 작동시킨 것이다. 이 레버가 시차視差 효과를 역전시킨다. 즉 레버가 가까이 있는 것을 멀어지게 하고, 멀리 있는 것을 가까워지게 한 것이다.
여러분의 마음은 시차가 심도 있는 이미지를 만드는데 필요한 수학적 계산을 하도록 훈련되어 있거나 유전적으로 결정되어 있다. --- 그리고 훈련을 위한 많은 근거들이 존재한다. 마음은 결단이나 여러분의 의식 없이 이런 묘기를 수행한다. 여러분은 그것을 통제할 수 없다.
나는 이 예를 내가 말하려는 오류의 패러다임으로 사용하고 싶다. 이 예는 아주 간단하다. 이것은 실험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인식론적 오류의 만질 수 없는 성격과 인식론적 습관을 변하시키기 어렵다는 점을 예증한다.
나는 지적으로는 내가 여러분을 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짐나, 일상적인 나의 사고 속에서. 나는 여러분을 본다. 그 실험을 목격한 1943년부터 나는 인식론적 환상의 세계보다는 진실의 세계에서 살아보려고 노력했지만, 내가 성공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마음의 생태학 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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