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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생각에 빠져 옳고 그름을 판단하려 들지 말고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조건 상대가 옳다, 잘했다고 생각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아이가 게임 중독에 빠지고 아내가 바람을 피우고 남편이 술독에 빠져 사는데 무조건 잘했다고 칭찬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행위에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원인과 조건의 흐름이 있고, 그 흐름 뒤에는 또 그 이전부터 이어져 온 업의 흐름이 있습니다. 소나무가 절벽 위 바위 사이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남기까지는 일정한 조건과 주변 상황과의 상호작용이 있었듯이 사람의 행위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의 행동은 오래전부터 형성되어 온 일정한 조건과 주변의 관계 속에서 일어난다는 것. 이전부터 쌓아온 업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선 지금 일어난 사실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내 주관과 시비를 내려놓고, 이미 일어난 일을 최대한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피고 인정할 때 진실의 문이 열립니다. 그 사실이 내 도덕적 기준에 합당한지 아닌지는 그다음 일입니다. 인정하는 것이 먼저고 합당함을 살피는 것은 그 뒤의 일입니다.
이 순서를 뒤집어서 이미 일어난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잣대에 맞춰 상대를 바라보는 데에서 세상의 모든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렇게 되면 나도 마음이 상하고 상대도 상처를 받게 됩니다. 이것이 전도몽상이 빚는 우리 현실의 고달픔입니다. 하지만 사실을 있는 그대로 살피고 인정하면 내 주관과는 전혀 다른 객관적 세계가 눈에 들어오게 되고, 그제야 비로소 문제 해결의 방법이 생깁니다. 1
T1000.0 : 한 마음 일어나는 것이 인연의 총상이므로 그 마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 그것이 지은바 인연의 결과임을 알아차린다. 그런데 결과를 결과로 인정하지 않고 결과를 원인으로 삼아 게임 중독에 빠졌으니 아내가 바람을 피웠으니 남편이 술독에 빠져 사니 내가 이렇게저렇게 할 수 밖에 없지 않느냐하고 합당함을 주장한다면 결과와 원인이 뒤집힌 전도몽상이 된다. 일어나는 사태 역시 그러하니 지은바 인연의 결과임을 인정하는 게 먼저이며 그다음으로 무엇이 합당한 선택인지 살피고 행한다. 불수자성 수연성(不守自性 隨緣成): 스스로의 자성을 지키지 않고 인연을 따라 행한다.
결과를 결과인 줄 모르고 그것을 제1원인으로 삼는 전도몽상이 아니라 결과를 결과로 인정하고 그다음의 할일의 합당함을 살피는 것은 그 결과에 머물지 않고 내가 제1원인이 되는 자유다.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以生其心): 마땅히 머뭄바 없이 그 마음을 낸다.
- 법륜스님, <금강경 강의> p311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