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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라구요?
네. 일할 때 나는 모호한 하나의 아이디어를 갖고 있을 뿐이며, 종종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 전혀 생각이 없을 때도 있지요. 캔버스 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는 어떤 면에서 순전히 우연에 달려 있지요. 물론 나는 어떤 한 가지에서 시작하지만, 대개 그것은 최초의 아이디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지요.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내가 일종의 유별난 자기 훈련을 하고 있다는 것도 또한 사실입니다. 회화란 단순히 캔버스 위에 물감을 뿌리는 것만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므로, 그건 일종의 자산일 테지요. 화폭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할 때 나는 마스터 플랜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수록, 일종의 능력에 해당하는 숙련된 기술이 생기지요. 어렸을 때에 비해 지금 나는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분명히 더 많이 의식하고 있는데, 그게 항상 그리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그러나 사실이 그러하므로 결국 내 그림을 구성하는 것은 이러한 열정과 예기치 못한 것과의 혼합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지금 나는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의 초상화를 그리고 싶은데, 어떻게 접근해야 좋을지 도무지 알 수가 없군요. 그게 언제나 내게 문제였습니다. 그걸 어떻게 해야 할지 나는 알지 못할 것이다, 라고 늘 생각하지요. 그러자 나의 작품과 그림 그리는 행위, 사건 사이의 그 우연한 만남이 이루어지고, 그리고 나서 그림이 떠오르는 겁니다. 난 여태 그것에 만족한 적이 거의 없지만, 그러나 때때로 사건과 의지의 행복한 결합이 이루어질 때가 있지요. 그건 즐거운 일이지요. (잔인한 손 1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