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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았다 죽었다 역시 분별일 뿐 사실 자체가 아니다. 사실은 변이만이 있을 뿐이다. 죽는다는 건 죽는 게 아니다. 다만 그렇게 생각할 뿐이다.
죽음이 두렵다는 건 어째서 일까? 죽는 순간은 길어봐야 잠깐이다. 애를 낳는 것보다 안 아플 것이다.
애 낳는게 두렵다면 애 키울, 내 걱정 때문이다.
나를 걱정하지 않는다면 두려울 게 무엇인가? 하물며 내가 없는 줄 아는 무아라면 죽음이 무서울 게 있겠는가. 걱정할 내가 없는데 말이다. 죽어야할 실체가 없으니 두렵다는 건 말이 안되고 죽는 작용은 있으니 다만 아쉬울 뿐이다. 내가 죽는다니! 다만 아쉬울 뿐이다. 만일 여한이 없다면 잘 산 게지.
노예로 살 것인지, 주인으로 살 것인지 다음은 없다. 바로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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