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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12.(스님의.하루)


즉문즉설(卽問卽說)도 일종의 탐구의 과정입니다. 즉문즉설을 즉문즉답이라고 표현하는 분들이 있는데, 즉문즉설과 즉문즉답은 다릅니다. 스님과 대화를 하다가 질문자가 ‘별 일 아니네’, ‘괴로울 일이 없네’ 이렇게 자각하게 되는 것이 즉문즉설이에요. 말씀 ‘설(說)’자를 사용했기 때문에 설법을 뜻합니다. 반면에 즉문즉답은 지식을 갖고 답하는 거예요. 지식을 많이 아는 사람은 즉문즉답을 할 수 있지만, 인생은 답이 없습니다. 인생살이에 어떻게 답을 줍니까. 인생을 어떻게 사느냐는 그 사람의 결정입니다. 그래서 저는 어떤 것이 바람직한 삶이라는 정답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얘기를 해도 ‘그럴 수도 있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자기가 결정해놓고 왜 자기가 책임을 안 지느냐 이 문제예요.

운명을 바꾸는 방법, 자각
대화를 하다가 본인이 ‘어, 별일 아니네. 내가 잘못 생각했네’ 이렇게 깨닫는 것을 자각이라고 합니다. 스스로 깨닫는다는 뜻이에요. 인간의 많은 정신 작용 중에 자기가 자기를 관찰하는 작용을 두고 ‘알아차림’이라고 합니다. 자각은 정신작용 중에 가장 뛰어난 작용입니다. 요즘 인공지능이 개발되고 있는데, 짜여진 프로그램대로 작동하는 것은 인간보다 인공지능이 월등하게 낫겠지만, 인공지능이 자각 작용까지 하는 것은 아마 어려울 거예요.

‘자각’이 우리의 운명을 바꿉니다. 담배를 많이 피우는 사람에게 아무리 옆에서 피우지 말라고 해도 스스로 자각이 일어나지 않으면 변화가 안 일어납니다. 결심과 각오로는 변화가 안 일어납니다. 그러나 어느 날 담배를 숨어서 피우다가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이렇게 하면서까지 담배를 피워야 하나’ 이런 자각이 일어나면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것처럼 저와 여러분의 대화 중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다면, 그건 법륜 스님의 공이 아니라 그 사람과 스님의 대화 중에 자각이 일어난 거예요. 자각이 일어나면 반복해온 습관에도 변화의 가능성이 열립니다. 그래서 인생의 변화는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밖에 할 수 없습니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어요. 만약에 강제로 훈련을 시켜서 변화시켜 놓았다면 곧 되돌아갑니다. 억압된 심리는 반드시 본래대로 갑니다. 그래서 하극상이나 쿠데타는 가장 억압이 심한 군대에서 일어나죠. 부모가 자식을 엄격하게 교육시키면 나중에 반드시 하극상과 같은 저항이 옵니다.

그래서 항상 아이들이 어떤 잘못을 했을 때는 야단치기보다 자기가 잘못했다는 것을 자각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이들은 자기가 잘못해놓고도 그걸 야단치면 억울해하잖아요. 그 이유는 자기가 잘못한 것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한 잘못 보다 벌이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10을 잘못했을 때 부모가 100을 나무라면, 일시적으로는 무서워서 잠깐의 교육 효과가 나타나지만 나중에 원위치로 되돌아가게 됩니다.

자각이 일어나도록 어떻게 환경을 만들거냐가 중요합니다. 조선 시대의 교육법 중에 아이가 잘못하면 매를 꺾어오라 해서 아이를 때리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엄마의 종아리를 때리게 하잖아요.

‘네가 잘못한 게 아니고 내가 너를 잘못 키웠으니 내 종아리를 때려라’

이럴 때 아이에게 어떤 자각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렇게만 하면 무조건 자각이 일어난다는 뜻은 아닙니다. 자각이 일어나는 환경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 연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오늘날 많이 회자되고 있는 창의적인 교육이 정말 이뤄지려면 이 문제에 중심을 두고 교육 시스템을 개발해야 됩니다. 모방은 강도 있게 훈련을 시키면 성과가 나는데, 창의력은 그렇게 한다고 일어나는 게 아니에요. 창의력을 가지라고 훈련을 시키면 창의력이 생길 수 없습니다.


한 해를 잘 마무리하는 방법
그것처럼 여러분도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자기를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을 한번 가져보면 좋겠어요. 기독교에서 ‘거듭난다’ 이런 표현을 쓰듯이 거듭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불교 용어로 말하면 ‘업장을 소멸한다’ 이렇게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용어만 다를 뿐이지 결국 같은 내용을 달리 표현한 겁니다.

자기 성찰이란 쉽게 말해 자기가 자기를 직시하는 겁니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사고하기 쉬운데 잠시 멈춰서 돌아보는 거예요. 지금까지 여러분들이 50년 내지 60년은 살았을 텐데 대부분 같은 방식으로 살아왔을 겁니다. 이대로 계속 살아가면 앞으로 30년이 더 지나도 똑같은 문제에 봉착합니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약간의 자각이 일어나면 곧바로 여러분들의 삶이 바뀌게 됩니다. 남이 볼 때는 더 못해진 것 같아도 본인은 삶이 바뀌는 걸 느낄 수 있어요. 남이 볼 때 더 좋아 보이는데 본인은 나쁘다는 사람이 있고, 남이 볼 때 나빠 보이지만 본인은 좋은 경우가 있거든요.

진정한 자유와 행복은 본인이 자기 삶에 대해서 만족하고 보람 있게 느끼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기 인생의 성공입니다. 그러면 눈을 감을 때 후회도 없고 아쉬움도 안 남습니다. 그런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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