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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를 끊임없이 부정하는 것이야말로 질병을 낳는 것이라고, 말하자면 유기체들 내부에서, 그리고 그것들이 존재 상황들과 맺는 관계에서 모두 유기적 조화를 상실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인간의 체계적 동학은, 그것이 영구적으로 부정된다면, 그것이 원래 가지고 있던 조화를 파괴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변화를 일으키며, 이번에는 추가적인 부조화들을 야기할 한층 더 파괴적인 도전들과 스트레스들을 신체들에 유발합니다. 그 결과들은 전염병들과 육체적/정신적 질병들에 감염될 가능성을 증대시키고 있습니다.

사랑에 대한 선생님의 서술을 인간의 '더불어 살아가기'의 방식들과 방법들을 드러내기 위해 사용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 되면 선생님의 사랑 이해는 하나의 수단으로, 지적 자극으로, 정밀한 서술과 대조되는 거울의 이면으로 기능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입니다. 일단 사랑이 무엇인지 이해된다면 언제 어떤 조건 하에서 사랑이 부정되는지 즉각적으로 알아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기 자녀들을 끝없이 교정하고, 실수를 했다고 해서 꾸짖고, 벌을 주겠다고 윽박지르는 부모들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문화의 특징들을 지각할 수 있고, 무한 경쟁이라는 높이 숭상되는 생각이 진보의 원천이 아니라 맹목을 낳으며(타자를 부정하기 때문에) 공존의 기회를 제한한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야망, 불신, 문화적으로 정착된 권력 추구, 통제를 향한 열정 등이 사랑을 사라지도록 하는 힘[폭력]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관계들의 경제화-요구들의 교환, 필요들의 협상, 타협들의 강제-는 소박한 연대감이 주는 유쾌함을 파괴합니다. 이 경제화가 상업적인 거래 실천 유형들에 따라 조직되기 때문입니다. 협력의 기초는 더 이상 상호신뢰와 상호존중이 아니고 단 하나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협상입니다. (있음에서 함으로 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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