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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를 따라 우리는 반시대성을 시간과 영원보다 훨씬 더 심오한 것으로 발견하게 된다. 즉 철학은 역사의 철학도 영원성의 철학도 아니다. 철학은 반시대적이며, 언제나 그리고 오로지 반시대적일 뿐이다. 다시 말해서 '내가 바라는 것은 이 시대에 반하는, 도래할 시대를 위한' 철학이다. 새뮤엘 버틀러를 따라 우리는 에레혼Erehwon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원초적인 '부재의 장소'를 의미한다. 그리고 그것은 위치를 바꾸고 위장하며 양상을 달리하고 언제나 새롭게 재창조되는 '지금-여기now-here'라는 것을 동시에 의미한다.
들뢰즈,『차이와 반복』p21
mlwlab: Erehwon은 now-here를 거꾸로 배열한 낱말이다. 들뢰즈는 에레혼이란 단어를 통해 철학이 '부재의 장소[no-where:어디에도 없는]'라는 반시대성을 추구하는 동시에 '지금-여기[now-here]'에 생동하는 이중적(또는 내재적) 의미를 멋지게 드러내 보이고 있다. 예컨데 철학이 추구하는 이상향은 반시대적이며 동시에 지금 바로 여기에서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철학은 삶의 재창조이며 지금 당장 가능하다. 철학은 삶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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