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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가 숙고한 진정한 자유는 요컨대 정합성이다. 둘 이상의 선택지에서 자유롭게 선택할 여지가 자유라고 생각하지만 이미 선택지에서 선택할 여지는 정합성에 의거해야 한다. 가령 목욕탕에서 나와 옷 벗을 자유를 선택하는 것은 맞지 않다. 마찬가지로 목욕탕에 옷입고 들어갈 자유를 선택하는 것도 맞지 않다. 인연을 따라 선택하는 것이 자유라고 생각한다. "불수자성 수연성"

2.
흔히 욕구대로 하는 것을 자유롭다 생각하기 쉬우나 역설적으로 욕구대로 하는 것은 욕구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때문에 욕구로부터 자유로움을 정리하면, 1.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을 때 [주저없이 한다. 망설이는 것은 바보다.] 2.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없을 때 [하고 싶어도 하지 않는다.] 3. 하기 싫은 것을 것을 해야할 때 [하기 싫어도 한다.] 4. 하기 싫은 것을 하지 않아도 될 때 [당연히 하지 않는다. 하기 싫은 것을 한다면 미친 것이겠지]. 문제가 되는 것은 3일 것이다.

3.
나의 경우에 비춰 실험적으로 말하자면, 3의 경우인, 하기 싫은 것을 해야할 때의 선택은 하는 것이 자유로운 길이다. 일상에서 이런 경우를 많이 겪는다. 회사에서 하는 일이 하기 싫은 마음이 생기지만 하지 않으면 안될 상황-가령 가족의 생계를 꾸려나가야 하니-에선 욕구대로 하지 않는 것이 자유로운 선택이고 책임있는 행동이다. 허나 욕구로부터 자유로운 선택이나 욕구대로 따르지 않으니 마음이 괴롭다. 힘들다. 이럴때 어떻게 해야하나? 어떻게 마음을 항복받아야하나?

4.
내 경우에 비춰보면, 욕구로부터 자유롭고 나아가 마음의 괴로움도 떨쳐버리려면 이러한 철학적 고찰이 필요한 게 아닐까?

겸손, 검소, 순수는 이제 아주 풍부하고 넘쳐흐르는 삶, 능력으로 충만한 삶의 결과들이 되어, 사유를 정복하고 다른 모든 본능을 자신에게 종속시킨다.-이것이 바로 스피노자가 자연Nature이라고 부르던 것이다: 욕구에 기초해서, 즉 수단과 목적에 따라서 영위되는 삶이 아니라, 생산, 생산성, 능력에 기초에서, 즉 원인과 결과에 따라서 영위되는 삶. 겸손, 검소, 순수 이것들은 그[철학자]에게는 현자가 되는 방식이고, 자신의 신체를 지나치게 오만하고 지나치게 사치스러우며 지나치게 육감적인 원인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신전으로 만드는 방식이다.
(들뢰즈, <스피노자의 철학> p10)

욕구대로 하지 못하는 괴로움에 집착하기보다 생산과 능력의 차원으로 시선을 넓혀 새로운 국면으로 나아가는 마음자세가 필요하다. 이러할 때, 즉 하기 싫은 것을 해야하는데 있어 이왕 할꺼면 제대로 해보자하는, 자기 스타일을 창출할 경험치가 쌓이지 않을까. 이는 더 큰 자유를 선택할 토대가 될 것이다. 물론 나처럼 이렇게 따져 묻지 않고도 생득적으로 행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예를 들어 공부가 하기 싫어도 해야할 때 욕구를 이기고 욕구로부터 자유롭게 공부한 사람들, 나아가 자신만의 공부 노하우를 창출한 생산성과 능력.

5.
진정한 자유의 의미를 알고 정합성을 따르지만 내 마음에 괴로움이 생길 때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지 생각해 본다. 나에게 싫은 마음이 드는 것은 이제껏 내가 지은 인연들 때문이지 일 자체, 사물 자체에 있지 않음[오온개공]을 깨우쳤음에도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다시 또 되새긴다. '자성을 따르지 않고 인연을 따라 이룬다.'

6.
인연을 따르는 것이 자성을 따르는 것보다 훨씬 더 흥미롭다. 자성을 따르면 뻔한 일 뿐이지만 인연을 따른다면 나도 모른다. 즉 뻔한 일이 없다.
하고 싶지 않을 일을 해야할 때 이 점을 명심해본다.

7.
"감정을 제어하고 억제함에 있어서의 인간의 무능력을 나는 예속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감정에 종속된 인간은 자기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고 운명의 지배 아래에 있으며, 스스로 더 좋은 것을 보면서도 더 나쁜 것을 따르도록 종종 강제될 정도로 운명의 힘 안에 있기 때문이다." (스피노자 <에티카 4부 서론>)

스피노자에 비춰보면, 하기 싫은 것을 해야할 때 하기 싫은 감정에 예속되어 하지 않는다면 "스스로 더 좋은 것을 보면서도 더 나쁜 것을 따르도록 종종 강제될 정도로 운명의 힘 안에 있"는 것이다. 하기 싫은 감정, 괴로운 감정은 나의 자성이고, 해야 할 때란 주어진 인연이다. 욕구로부터의 자유는 해야 할 때 자성을 따르지 않고 인연을 따라 이루는 선택이고 정합성이다. 또한 인연을 따르는 행위 속에서 괴로운 감정도 누그러진다. 감정이란 늘 변하니 그 마음을 붙잡지 않는 의식적인 수행이 필요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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