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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가 보는 저것은 목불木佛이다.
네가 보는 저것은 땔감이다.
그럼 저것은 목불인가 땔감인가?
2.
그것은 그것일 뿐.(내가 보는 실재는 공하다)
나에게는 목불이고,
너에게는 땔감이다.
둘 모두 동등하고 타당한 실재이다.
내가 땔감을 목불로 잘못 본 것이 아니고
네가 목불을 땔감으로 잘못 본 것이 아니다.
3.
이것은 목불이 아니라 땔감이라고 한다고
이것은 땔감이 아니라 목불이라고 한다고
옳고그름을 결정할 수 없다.
4.
그런데,
내가 보는 목불을 보면서 목불이 아닌 줄 알고
(내가 보는 실재를 환상처럼 본다)
내가 보는 땔감을 보면서 땔감이 아닌 줄 알면
즉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하면, 인연을 따라
목불이 아니라 땔감으로,
땔감이 아니라 목불로 자유자재 쓸 수 있다.
5.
왜 '환상처럼 보는지'를 성찰하면 이러저러한 신념들을 기꺼이 버릴 수 있다. 단하소불丹霞烧佛의 단하처럼.
"어떤 사람의 진정한 지혜는 영속적인 자기 고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찰의 역량에, (특정한 상황들을 정확하게 지각해내는 것을 방해하는) 이러저러한 신념들을 기꺼이 버릴 수 있는 자발성에 있다는 것이 내 견해입니다. 현명한 사람은 늘 자기 자신을 관찰하지 않습니다. 또한 그들은 자신들이나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해야만 하는가를 지시하고 있는 궁극적 진리에 인도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있음에서 함으로> p54
6.
한가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내가 보는 저것은 목불이다 또는 내가 보는 저것은 땔감이다할 때 내가 본다는 것은 주관적으로 그렇게 본다는 것이 아니라 생리학적으로(과학적으로) 내가 본다는 것을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말해 본다는 체험에 대해 말하고 있다.
원효대사의 유명한 해골물 사건에서 일체유심조는 신체와 분리되는 마음의 문제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그러나 내가 말하고자 하는 마음은 신체와 분리되지 않는 마음으로서, 생물학적인 의미로 일체유심조이다. '나는 내가 본다는 것을 본다. 공중무색 무수상행식... 아무 것도 없다. 아무 것도 얻을 것이 없는 고로 환상처럼 본다.' <반야심경>이 말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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