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학생을 집으로 보낼 수 있는 좋은 점수는 어떻게(무엇으로) 매겨집니까? 좋은 점수란 운 좋은 단순화의 증거입니다. 만약 늘 원하던 답을 내게 되면 좋은 혹은 두드러진 점수를 얻게 되겠지요. 그렇지만 그게 다 입니다. 컴퓨터공학자인 저의 학생들 중 하나가 한 번은 아주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했습니다. 이는 디플롬이나 박사논문의 요약으로 사용할 수도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강의 중 필기해야 할 교수의 중요 단어들로부터 제대로 되 수 많은 문장을 구성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만약 이러한 필기 프로그램을 이용한다면 뛰어난 점수를 딸 수 있겠지요. 하지만 그것은 완전히 트릭일 뿐입니다. (발명품 106)
'시험은 시험을 시험한다'는 제 생각을 이해시키기 위해 예를 하나 들어 보겠습니다. 이 예는 20세기의 천재적인 한 수학자에 의해 발명된 것입니다. 알란 튜링이라는 영국 수학자인데 그는 '기계들도 사유할 수 있을까?' '인공지능이 있나?'라는 문제를 스스로에게 던졌는데 그는 답을 구하기 위해서 튜링테스트라는 것을 만들어 내서 상당한 유명세를 얻었습니다. 튜링테스트는 제가 볼 때 테스트에 관한 근본적인 패러다임으로써 지금도 인공지능 연구자들로부터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이렇습니다. 붉은 막이 쳐진 작은 극장이 있고 그 막 뒤편에는 자세히는 알려지지 않은 어떤 무엇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장막 앞에서 안경을 쓰고 긴 수염을 기른 학자들이 앉아 있습니다. 이 학자들이 이제 장막 뒤의 그 무언가에게 질문을 ..
보통의 방법은 시험지를 쓰게 하고 숙제를 내 주고 그것들을 함께 모아 평가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것이 제대로 기능하지도 않고요. 제 견해는 어느 누구도 학생들이 아는 것을 알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학생들은 단순치 않은 체계라서 그들이 분석적으로 접근 가능한 것으로 여겨져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제 주장은 시험이나 어떤 테스트가 학생들을 시험하는 것이 아니고 시험은 시험 자체를 시험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저의 이론은 '시험은 시험을 시험한다'라고 할 수 있지요. 제게는 그런 공식이 분명치 않군요. 차라리 보통의 생각인 "시험은 시험받는 사람을 시험한다"가 맞는 것 같은데요. (발명품 104)
모든 선생님이 학생들의 원칙적인 비단순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 이것이 결론이군요. 당연합니다. 게다가 단순화가 이미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교육학의 과제는 탈단순화, 다른 대답들에 주의를 기울이기, 해법과 시각의 다양성으로 이끌기입니다. 예를 들어 그 꼬마에게 어떤 숫자는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기술된다는 것을 알려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선생님이 원하던 '6'이라는 답을 얻었다 하더라도 '6'은 뭐지?'라고 계속 물어갈 수 있을 겁니다. 그 때 가능한 답들은 6은 36의 제곱근, 6은 5에다 1을 더한 값, 8에서 2를 뺀 것, 3×2, 2×3 등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발명품 103) 교육학자이자 언론매체비평가인 닐 포스트먼이 한 적 있는 제안을 보면 보는 방식(시각)을 다양화하는 일은 엄격..
1. "지시명령적 간섭의 신화를 던져 버렸기 때문에, 구성주의적 치료사들은 자기 환자들의 건강의 증진과 치료에 책임이 있다는 생각을 던져 버려도 좋다" 역으로 생각하면 이렇게 되는 것이겠죠. 설령 환자가 악화되더라도 치료사들은 결코 죄가 없다는 것입니다. 치료사들이 어떠한 비판적인 상황에서도 벗어날 수 있는 완벽한 정당화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2. 우리는 이 문제와 관련해서 더 자세하게 논의해야 합니다. 물론 나는 다른 사람들이 내가 말하고 행하는 것을 어떻게 이해하는지에 대해, 그들이 나의 행위들과 발언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또는 해석하는지에 대해 책임질 수 없습니다.[T1000.0 그것은 그들의 문제, 그들의 자유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듣는 것을 듣고, 자기들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