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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

T1000.0 2012. 5. 18. 16:06

선의에 대하여


비록 선의로 한 행동이라도 결과가 나쁠때가 있다.
잘할려고 한 것인데 오히려 역효과를 내는 경우는 생활에서 자주 벌어지는 일이다. 이런 일을 겪고 반성하다보면 내심 나서지 말자, 간섭하지 말자라는 행동방침을 가지게 된다.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에선 늘 '남에 인생에 간섭하지 마라'한다. 귀담아들을 이야기다. 사실 가족 간에도 간섭을 하다 불행을 초래하는 경우가 있다. 가령 부모가 자녀의 인생에 크게 간섭하면 오히려 자녀를 망치는 사례는 줄곧 본다. 물론 부모는 선의다. 무엇이 문제인가? 선의를 가지는 게 잘못이 아니고 또 간섭이 무조건 나쁜 것도 아니다. 이에 대한 중요한 가르침이 장자에 나온다.

너는 들어보지 못했느냐? 옛날 바닷새가 노나라 서울 밖에 날아와 앉았다. 노나라 임금은 이 새를 친히 종묘 안으로 데리고 와 술을 권하고, 아름다운 궁궐의 음악을 연주해 주고, 소와 돼지, 양을 잡아 대접하였다. 그러나 새는 어리둥절해하고 슬퍼하기만 할 뿐, 고기 한 점 먹지 않고 술도 한 잔 마시지 않은 채 사흘 만에 결국 죽어버리고 말았다. 이것은 자기와 같은 사람을 기르는 방법으로 새를 기른 것이지, 새를 기르는 방법으로 새를 기른 것이 아니다.
 
『장자』「지락」

노나라 임금은 새를 아낀 나머지 선의를 가지고 바다새를 대접한다. 임금은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선의를 가지고 타자에게 행한다. 그러나 문제는 나(임금)의 선의다. 남을 위하는 것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하는 행위가 선의로 정당시된다. 그러나 새를 위하는 것은 내가 원하는(혹은 좋아하는) 방법(고기와 궁궐음악 등)으로가 아니라 새가 원하는 방법으로 행해져야 한다. 만일 새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그를 위해 간섭하지 않는 것이 바로 최고의 선의인 것이다. 그렇다. 남의 인생에 간섭하지 마라. 더욱이 그가 원하지 않으면, 즉 나에게 요청하지 않으면 나는 그에게 간섭하지 말아야한다. 한가지 주의할 것은 간섭하지 않는 것이 외면은 아니다. 간섭하지 않되 관심은 가져야한다. 그리고 그가 요구를 하면, 그가 도움을 청하면 나는 그의 요구를 도와주어야한다. 그럴때 선의가 빛을 발한다.

무위(無爲). 무위는 장자의 핵심 사상이다.
나는 함이 없음을 이렇게 이해한다. 무위, 그것은 간섭하지 않는다. 함이 없고 간섭하지 않으니 바쁘지 않고 한가롭다. 한가로우니 누군가 요구를 하면 도울 수 있고, 인연이 되어 할 일이 생기면 행한다. 그 뿐이다. 함이 없다는 것은 또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집착은 (집착에관하여란 글에서 말했던 것처럼) 나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타자를 방치하고 외면하는 잘못이다. 무위는 간섭하지 않는 것, 집착하지 않는 것. 타자에게 열린 마음이며, 자유다. 

자기반성

공자의 『논어』를 읽다가 나를 사로잡는 구절이 있었다. 

자공이 물었다. "평생에 지침이 될 만한 한 말씀이 있겠습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서恕일 것이다.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도 행하지 말라.『논어』「위령공」

나는 이 구절이 마음에 와닿았다. 나는 예전부터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 시키지 않는다.' 공자의 말은 공자의 위신을 업고 나의 정당성에 힘을 실었다. 실제로 나는 내가 하기 싫은 일은 일부러 한다. 그리고 남에게 요구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내가 옳다는 생각이 깔리니 무의식적으로 나는 남에게 요구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남에게 싫은 소리를 안하게 되고 다들 싫어하는 일을 나서서 하니 나는 착하다는 이야기를 듣게된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문제는 내가 그렇게 하듯이 타인도 그래야한다는 기대가 나도 모르게 있었나보다. 그런 나에게 다른 사람이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을 나에게 요구해오면 화가 나는 것이다. 그가 나의 아내라도 말이다. 나는 화가 일어나는 게 싫다. 그 화에 내가 휘둘리고 싶지 않다. 또 화는 참는게 능사가 아니다. 참으면 더 커지는 게 화이다. 그런 고민을 갖고 있는 중에 『철학vs철학』을 읽고 이 문제를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은 앞서 인용한 공자의 말과 장자의 말을 비교하면서 공자의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도 행하지 말라'는 원리를 '남이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행하지 말라'라는 장자의 원칙으로 극복해야함을 통찰한다. "자신이 원하는 것으로 상대를 대하지 말고 오히려 나는 원하지 않더라도 상대가 정말 원하는 것으로 그를 대우하라." 
나는 내가 그러하니 너도 나에게 그러하길 바라는 것이, 내가 옳다는 집착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나의 집착이 잘못임을 장자의 바다새를 통해 알았다. 잘못된 집착을 내려놓을때 나의 화는 사라질 것이다. 화가 없으니 화를 참을 일도 없다. 이제 남이 하기 싫은 일을 도와달라 할때 기꺼이 하자. 내가 옳다는 집착을 버리고 무위의 상태로 있다가 그가 간섭이 필요하다고 하면 기꺼이 돕자. 기꺼이 쓰이자. 다만 쓰일 때 내 역량을 넘는 간섭은 금물이다. 분에 넘는 간섭은 욕심이고 욕심은 그와 나에게 득이 안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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