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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사회체계들이 그것들이 특수한 요구들 - 타자의 수용과 인정 - 을 충족시킬 때처럼 그렇게 범주화될 수 있을 뿐이라면, 사회학자들, 사회에 대한 전문적인 관찰자들의 현실적 과제들이 무엇일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들의 주제들은 무엇입니까? 더불어 살기의 어떤 형태들이 사회학적 분석의 적법한 대상들로 남아 있습니까?
1.
사회학자들은 인간관계들의 기저에 있는 감정들을 다루어야 합니다.
그들의 과제는 어떻게 이러한 감정들이 공통적인 삶의 방식들과 양식들을 주조하는지 보여주는 것이어야 합니다.
나는 예전에 호모사피엔스 아만스와 호모 사피엔스 아그레상스를, 그리고 호모 사피엔스 아그레상스와 호모 사피엔스 아라곤스를 구분할 것을 제안한 적이 있습니다. 이들 개념들은 모두 사랑, 공격 오만과 같은 근본적인 감정들과 관계가 있습니다. 이것들은 인간 진화의 과정 중에 확립된 유형들에 영향을 미쳐 왔고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언어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 - 의 존재를 이루어 냈습니다.
선생님은 - 합리적인 논증들이 아니라 - 감정들을 본질적으로 결정적인 힘들로 간주하는 것 같은데요.
감정들이 우리를 인도합니다. 다른 사람들과 맺는 관계를 '모든 것을 감싸는' 방식으로 변모시키는 사람들은 좀더 면밀한 고찰을 통해, 그들이 사실상 자신들의 기저에 존재하는 감정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는 점을 인식합니다.
감정들이 행위들을 위한 배치라는 것이 내 견해입니다. 내가 볼 때 감정들은 합리적인 체계를 수용하느냐 또는 거부하는냐 하는 것 역시 결정하는 매우 기본적인 무엇인 것 같습니다.
모든 합리적인 체계들과 토론들은 본래 비합리적인, 그리고 개인적인 편견들로 인해 받아들여지는 토대에 의존합니다.
따라서 이러한 편견들에서 기인하는 우리의 행위들을 합리화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 사건 이후에 그러한 행위들을 정당화하는 일이 쉽게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솔직히 말하자면 합리성이란 정당화의 방법이자 수단인 것입니다.
내게 인간들은 감정들을 부정하거나 정당화할 목적으로 자기의 마음과 합리성을 이용하는 감정적 동물입니다.
2.
이러한 서술을 들으니 조금 골치가 아파지는군요. 선생님은 이런 골치 아픈 느낌을 예술 분과 대표자의 전형적인 편견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여하튼, 선생님의 특정화는 인간들을 합리적 동물로 평가절하는 것과 매한가지 아닌가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감정들을 이성에 간섭하는 힘들, 심지어는 이성을 위협하는 힘들로 평가절하하는 것이 우리 문화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특징입니다. 여기에서 이미 현실적인 평가절하가 존재하게 됩니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 있는 것은 사랑이 윤리적 행위를 가능케 해주는, 무엇보다도 행위들의 결과들에 대해 성찰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을 포함하는 행위를 가능케 해주는 가장 중요한 감정이라는 것입니다. 윤리적 관심은 자기 깨달음이 발생하는 순간에, 그리하여 한 인간의 행위들이 개인적 중요성을 갖는 또 다른 인간에게 가할 수 있는 결과들이 의식적으로 성찰되는 순간에 나타나게 됩니다. 내가 볼 때 윤리는 사랑의 결과입니다. 윤리는 언어 속에서 출현합니다. 오직 언어만이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선택된 행위 과정을 성찰할 수 있도록 해 주기 때문입니다. (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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