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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순환성
차이의 반복
오직 변이 뿐
[흐르는 물처럼
같은 얼굴을 두 번 볼 수 없다]


2.

첫 번째 특징은 자기라는 전철이 순환성의 계기를 갖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 개념은 그 개념을 사용하는 당사자를 거꾸로 되돌려서 주목하게 합니다.

훌륭합니다. 의식의 의식이 (의식이 자신을 의식하는 것이) 자기의식인 것이지요. 이해의 이해가 (이해를 이해나는 것이) 자기이해이고요. 그래서 조직화의 조직화가 자기조직화인 것입니다. 이러한 자기가 등장하면 언제나 순환성의 그러한 계기를 강조할 것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그러면 결과적으로, 자기는 정적인 혹은 고정된 어떤 것으로 드러나지 않고 늘 그리고 영속적으로 새로이 산출됩니다. 운동에 빠져드는 것이지요. 우리가 자기 조직화에 대해서 말할 때에도 역시 이 개념의 역동성은 유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기는 모든 순간에 시시각각 변하는 겁니다.(발명품 147)


그렇게 보면 인간의 정체성이라는 것도 더 이상 자체적으로 확정적인 것이 아니라 늘 순간적으로 결정된 현상 형태에 지나지 않으며 지속적으로 변동하는 상호작용과 만남의 결과이네요. 유일한 상수는 변화뿐이네요. 

맞습니다. 늘 변동과 운동이 지배합니다. 자기라는 개념은 순환성의 가장 협소하면서도 최종적인 게임형식입니다. 그것은 자아의 순환성입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이 예사롭지 않은 자아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해 볼 수 있습니다. 제 대답은 '그것은 끝없는 성찰의 성찰의 성찰이다'입니다. 자아란 자신에 대한 무한한 (끝없는) 성찰의 고유치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쉼 없는 운동에 대한 이러한 생각은 심리학자들이 환자들에게서 정체성 위기를 진단할 때 자주 언급하는, 정태적으로 파악되는 정체성에 대한 관념과 구분됩니다. 사실상 그런 위기(정체성 위기)를 만들어내는 당사자는 다름아니라 정체성과 같은 어떤 것을 믿는 심리학자라는 점을 지적하고 넘어가야겠습니다. (발명품 148)

3.

정리를 해 보겠습니다. 이번 대담 초반에 당신은 사이버네틱스의 근본원리로 순환적 인과성을 기술하고 모든 인식의 순환성을 강조 했으며 사이버네틱스의 사이버네틱스의 윤곽을 그렸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2차 수준의 자기연관적인 진술들을, 금지하는 게 아니라, 허용하는 새로운 논리학의 문제가 등장했습니다. 줄곧 문제가 되었던 것은 순환성이라는 아이디어와 그것의 결과물들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는 것어었습니다.

완벽하군요. 사이버네틱스와 순환성에 대한 우리의 대담에 대한 참 멋진 결론입니다. 그런데 그런 결론은 끝이 아니라 다시 하나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어떤 궁극적인 결말로 나아가기 보다는 또 하나의 시작이 될 겁니다. 시간은 항상 함축적입니다. 헤라클레이토스의 금언을 보세요. '만물은 유전한다.' 그리고 덧붙여집니다. '인간은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 제가 이것을 바꾸어 표현한다면, '인간은 같은 얼굴을 두 번 볼 수 없다'가 될 겁니다. 한 번 본 얼굴을 우리는 다시는 볼 수 없습니다. 다른 모든 것처럼 얼굴도 영원히 지나가 버립니다. 그렇지만 저는 테오발트 아저씨의 얼굴을 두 번 바라 볼 수는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저씨 얼굴은 시간의 흐름을 정지시키는 말(언어)이니까요. 정태적인 상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시작과 끝의 궁극점은 없습니다. 지금까지 전개되었던 공중제비돌기는 배워져야 합니다. 아니, 우리는 공중제비돌기를 도는 순간에 즐길 수 있습니다. (발명품 194)

4.

어쨌든 그것은 나의 삶을 변형시킨 체험이었습니다. 이 변형과 의식 확장의 요소는 나의 체험에 (어릴 때에는 그렇게 명확하지 않아서 두 해석들 중에서 선택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던) 정신적인, 신비적인 차원을 회복시켜 주었습니다. 나는 죽음에 대한 모든 두려움에서 벗어났습니다. 나는 사물들에 대한 집착을 그만두었고 내 자신을 그것들과 부당하게 동일시했던 것을 그만두었습니다. [이무소득고 고심무가애 무가애고 무유공포 원리전도몽상 구경열반] 죽음과 마주침으로써 나는 내가 전체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체험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더 성찰적이게 되었고 덜 교조적이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내가 나 자신을 '모든 세속적인 유대를 초월하는 영광스런 존재'로 서술하고 싶다는 것을 의미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결코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 체험은 너무 강렬했고 그래서 나의 삶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나는 모든 것이 순간적임을, 오직 변이일 뿐임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그 어떤 것도 옹호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그 어떤 것도 붙잡고 있을 수 없습니다. (함으로 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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