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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가 감각하는 것이 거기에 없음.

내가 생각하는 것이 거기에 없음.
내가 좋아하는 것이 거기에 없음.

 

 

2.

우리 감각이 원래 그대로의 실재를 반영하지 않는다고요?

그래요.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우리는 결코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이라고는 자극을 받은 우리의 감각이 우리 앞에 펼쳐내 보이는 것뿐입니다. 인식의 입구에서 (인식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소위 세계의 심부름꾼들은 (세계의 다양한 모습들은) 그들 자신의 특별한 속성들을 없애 버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연관하여 오늘날은 자극의 무차별적 부호화가 얘기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극 혹은 교란이 있다는 것만 알 뿐입니다. 이게 신경세포가 알려주는 전부입니다. 그러나 교란의 원인은 불분명하고 그 원인은 특수하게 부호화되어 있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시신경섬유를 식초로 자극할 경우 우리는 색이 있는 빛을 지각하게 됩니다. 혹은 미각을 느끼는 혀의 돌기를 몇 볼트의 전극봉으로 자극할 경우 우리는 식초 맛을 느끼게 됩니다. 생리학 교재에서 볼 수 있는 이러한 관찰을 통해 볼 때 외부세계가 내부세계에 베껴진다고 말하는 것은 우스꽝스럽고도 말이 되지 않는 얘기라 할 것입니다. 식초가 색의 흔적이 되고 전기가 식초가 되는 겁니다! (진리는 거짓말쟁이의 발명품이다 22)

3.

지금의 내 생각은 실체는 없고 작용만 있는[원인들의 질서는 모른채 결과만을 받아들이는] 구조에서 생겨난 것. 그렇다면 자동차를 보고 소유하고 싶은 생각이 든 것을 두고 자동차가 원인이고 소유하고 싶다는 생각을 결과로 받아들이는 관점은 무지때문이다. 소유하고 싶은 생각 작용은 결과이나 그 원인은 자동차가 아니다. [원인을 모르는 무지를 자동차가 그 생각을 갖게 한 목적인으로 대체하는 전도몽상] 자동차는 그 생각을 유발할 뿐 그 생각을 결정하지 못한다. 누구나 자동차를 보고 똑같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인과론적 사유의 오류]. 내가 좋아하는 것이 나에게 있지 자동차에 없다. 자동차는 자동차일 뿐이고 내가 자동차를 좋아하는 것이다. 자동차에는 내가 좋아하는 실체가 없다. 내가 자동차를 좋아하는 작용만이 있다. [자동차는 유발할 뿐 내가 좋아하도록 결정하지 못한다.] 

실체가 없다는 것을 알면 작용은 받아들이고 실체에는 집착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감각하는 것이 거기에 없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것이 거기에 없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거기에 없기 때문이다.

실체가 없는 줄 알면서도 실체가 있는 줄 집착하게 된다면 이를 알아차리고 내가 또 어리석게 구는구나[참회] 하고 돌아봐야 한다.

4.

내가 자동차를 보고 소유하고 싶다는 생각은,
나라는 주체와 자동차라는 대상을 구분을 할 뿐이지 분리되지 않는다. 하나의 연결된 체계내에서 일어나는 일이기에 신체의 변용이, 변용에 대한 생각이 결과로 드러난다.[유식] 모든 것이 나와 이어져있어 나의 행위가 이 하나의 체계를 훼손하느냐 아니냐의 책임이다.

 

5.

돈이나 명예에 대한 집착이 허망한데는, 집착으로 인해 인생이 낭비되고 종속되기 때문이다. 인생의 주인으로 살 것인가, 노예로 살 것인가. 만일 돈만 많다면 노예로 살아도 좋다라면 나쁠 것 없다. 주인으로 살고 싶다면 실체가 없는 줄 알아야 한다. 매일데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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