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제3부 감정의 기원과 본성에 대하여

정리2. 신체가 정신을 사유로 결정할 수는 없으며, 정신도 신체를 운동이나 정지로 또는 (만일 다른 어떤 것이 있다면) 다른 어떤 것으로 결정할 수 없다.

 

증명: 사유의 모든 양태는, 신이 사유하는 존재인 한에 있어서, 신을 원인으로 가지며, 신이 다른 속성에 의하여 설명되는 한에 있어서는 그렇지 않다(제2부 정리 6에 의해). 그러므로 정신을 사유로 결정하는 것은 사유의 양태이지 연장의 양태가 아니다. 즉 (제2부 정의 1에 의해) 신체는 아니다. 이것이 첫번째 점이다.

다음으로, 신체의 운동과 정지는 반드시 다른 물체로부터 일어나며, 이 물체도 역시 다른 물체에 의해 운동이나 정지로 결정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절대적으로 신체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신이 사유의 어떤 양태로 변용해 있다고 고찰되는 한에 있어서, 이 신으로로부터 일어나지 않으면 안된다(마찬가지로 제2부 정리 6에 의해). 즉 그것은 사유의 양태인 정신(제2부 정리 11에 의해)으로부터 일어날 수가 없다. 이것이 두 번째 점이었다. 그러므로 신체가 정신을 결정할 수는 없으며,...Q.E.D

 

T1000.0 : 예컨대 초능력, 생각으로 물체를 옮기는 능력을 사유하는 양태는 망상이다. 이는 "사유의 양태로서 신이 사유하는 존재인 한에 있어서, 신을 원인으로 가지는 것이 아니며, 신이 다른 속성에 의해서" 설명되는 한에 있는 경우인데, 물체가 움직인다는 것은 그 속성이 연장의 양태에 속하기 때문에 사유의 양태로서 신을 원인으로 가지지 않는 망상이다.  
T2020. 정신은 신체를 결정하지 못하고 신체 역시 정신을 결정하지 못하는 가운데 둘은 동일하다. 하나의 실체를 상이한 속성이 나타나는 양태는, 말하자면 [분명한] 둘이면서 하나.

 

주석[각주:1]:

1. 이러한 것들은 제2부 정리7의 주석에서 말한 것에 의해 더욱 명확하게 이해된다. 그것에 의거하면, 정신과 신체는 동일한 것이며, 그러한 것이 때로는 사유의 속성 아래에서, 때로는 연장의 속성 아래에서 파악된다. 그러므로 사물들의 질서나 연결은, 자연이 이 속성 아래에서 파악되든, 저 속성 아래에서 파악되든 하나이며, 따라서 우리 신체의 능동 및 수동의 질서는, 본성상, 정신의 능동 및 수동의 질서와 동시적이다. 이것은 우리가 제2부 정리 12를 증명한 방식에 의해서도 명백하다.

 

T1000.0 : 이렇게 고쳐 말하면, 인간의 몸과 맘은 동일한 것이며, 하나이며, 사유의 속성 아래에서는 맘으로, 연장의 속성아래에서는 몸으로 파악된다. 이는 빛이 관측하는 조건에 따라 입자로 또는 파장으로 파악되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사물들의 질서나 연결은, 자연이 이 속성 아래에서 파악되든, 저 속성 아래에서 파악되든 하나이며, 빛이 그런 것처럼. 따라서 우리 신체의 능동 및 수동의 질서는, 본성상 정신의 능동 및 수동의 질서와 동시적이다. 

정신과 신체의 질서가 동시적이란 것이 주는 교훈은 삶은 이론과 실천, 깨달음과 수행이 동시적으로 이뤄져야 온전한 것임을 확인한다. 즉 삶에 유용한 공부는 머리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몸도 동시적으로 닦아가야 함을 증명한다. 요컨대 삶이란 행복한 삶을 살도록 몸과 맘을 동시에 닦아가는 수행의 과정인 것이다.

 

T2020. '자연이 이 속성에서 파악되든 저 속성에서 파악되든 하나'인 것처럼 동일하게 스피노자의 양태로든 부처의 양태로든 도달하는 진리는 하나다,는 나의 주장이다. 하나의 실체가 상이한 속성으로 보여주듯 스피노자를 또 부처의 가르침을 탐구하다보면 하나의 실체를 마주하게 되는 것 같다. 비록 스피노자는 실체, 자연, 신이라 부르고 불교에선 공, 불성이라 그 이름을 달리 부르지만 말이다.

 

 

2. 사정이 이러하여 의심할 이유가 전혀 남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사상을 경험에 의해 확증하지 않는다면, 사람들로 하여금 이것을 냉철히 고찰하게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그토록 강하게 확신하는 것은 이러하다. 즉, 신체는 단지 정신의 명령에 따라서만 움직이거나 정지하며, 오직 정신의 의지와 사고의 기능에만 의존하여 많은 일을 행한다. 그 이유는, 신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아직껏 아무도 결정짓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신체가 물체적인 것으로 고찰되는 한에 있어서의 자연의 법칙에 의해서만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또 정신에 의해 결정되지 않으면 무엇을 할 수 없는지를 지금까지 아무도 경험에 의해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여태까지 아무도 신체의 모든 기능을 설명할 수 있을 만큼 정확하게 신체의 구조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지혜를 훨씬 능가하는 많은 것이 동물의 세계에서 관찰되고, 몽유병자가 깨어 있을 때는 감히 하지 않는 많은 것을 수면 중에 행하는 것에 대해 설명할 수 없음은 말할 것도 없다. 이것은 신체가 오직 자체의 본성에 의해서만 자신의 정신을 놀라게 하는 많은 것을 할 수 있음을 충분히 증명한다.     

또, 어떤 식으로, 어떤 수단을 통하여 정신이 신체를 움직이는지, 또한 어느 정도의 운동을 신체에 부여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얼마만큼의 속도로 신체를 움직일 수 있는지를 아무도 모른다. 따라서 사람들이 신체의 이 또는 저 활동은 신체에 대해 지배력을 갖고 있는 정신에서 나온다고 말할 때, 그들은 자신들이 말하고 있는 것을 모르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그 활동의 정확한 원인을 모르면서도 그것에 대해 이상하게 여기고 있지 않다는 것을, 듣기 좋은 말로 자백하는 것에 불과하다.

 

T1000.0 : 신체에 대해 알되 잘못 알고 있는 것이 무명이다. 즉 정신이 신체를 지배한다거나 모든 게 정신력에 달렸다고 말하는 것은 자신들이 말하고 있는 것을 모르는 것으로 알되 잘못 알고 있는 무명. 무명이 문제인 것은 정확한 원인을 모르면서도 그것에 대해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확실성을 부여하기 때문에 허위이고 오류.       

 

3.1 그러나 그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어떤 수단을 통하여 정신이 신체를 움직이는지 알든 알지 못하든 정신이 사유에 적합하지 않을 경우에는 신체가 활발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3.2. 또 이렇게 말할 것이다. '말하는 것이나 침묵하는 것, 그리고 다른 많은 것을 행하는 것은 전적으로 정신의 능력 안에 있음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고, 따라서 이러한 일들은 정신의 결의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4.1(3.1) 첫번째 점에 관하여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묻는다. 경험은, 반대로, 신체가 활발하지 않을 때에는, 동시에 정신이 사고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도 또한 가르쳐 주지 않는가? 왜냐하면 신체가 잠이 들어 정재해 있는 동안에는 정신도 동시에 신체와 더불어 무의식 상태에 머무르며, 깨어 있을 때와 같이 사고하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정신이 동일한 대상에 관하여 사유하기에 항상 똑같이 적합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체가 이 또는 저 대상의 심상을 자신안에 재생하기에 적합할수록, 정신도 이 또는 저 대상을 고찰하기에 더 적합하다는 것을 누구나 경험했으리라고 나는 믿는다.

 

4.2 그러나 그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즉, 건축, 회화, 그리고 인간의 기교에 의해서만 만들어지는 이런 종류의 다른 사물들의 원인을 단지 물체적인 것으로만 고찰되는 한에 있어서의 자연의 법칙에서만 이끌어 낼 수는 없다. 또 인간의 신체는 정신에 의하여 결정되고 인도되지 않는 한 사원과 같은 것을 건축할 수는 없다.

 

4.2.1 그러나 내가 이미 말했듯이, 그들은 신체가 무엇을 행할 수 있는지, 또 신체의 본성만을 고찰하는 것으로부터 무엇을 이끌어낼 수 있는지 알지 못하며, 또한 그들은 정신의 인도없이 일어날 수 있다고는 자신들이 결코 믿지 않았을 많은 것들, 예를 들면 몽유병자가 수면 중에 한 행동들(이것에 대해 그는 나중에 잠이 깨고 난 다음에 스스로 놀란다)이 오로지 자연의 법칙에 의해서만 일어난다는 것을 경험에 의해 알고 있다.  

나는 여기서, 인간의 신체 구조 자체가 인간의 기교에 의하여 만들어진 모든 것을, 정교함에 있어서, 훨씬 능가한다는 점을 덧붙여 말해둔다.-내가 앞에서 밝혔던 것, 즉 자연이 어떤 속성 아래에서 고찰되더라도 자연으로부터 무한히 많은 것이 발생한다는 점은 말할 것도 없고.

 

T1000.0 : 정신이? 대체 무엇이 그림을 그리는지, 화가 프란시스 베이컨의 말을 들어본다.

 

아솅보: 그렇지만 당신은 적어도 한 번은 그와 같은(리얼리즘적인) 주제를 그린 적이 있지요. 믹 재거의 초상말입니다.

 

베이컨: 오, 네. 그렇지만 그건 실제로 주문을 받아 어쩔 수 없이 그린 것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내게 그의 초상을 그려달라고 부탁했는데, 난 재거를 알지 못했고, 그리고 그 그림을 그리는 동안에 워홀에 대해선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지요.

결코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당신도 알다시피 비록 그가 팝 아티스트들 가운데 가장 지적인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지성은 결코 예술을 만든 적이 없으며 그림을 만든 적도 없습니다....... 불행하게도.

 

아솅보: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그림을 만듭니까?

 

베이컨: 그것에 대해선 정말 아무도 모릅니다.

 

아솅보: 그러나 만약에 그것이 단순히 지성의 문제가 아니라면, 그림은 어디에서 유래하는 겁니까? 가슴으로부터, 위장으로부터, 아니면 대장으로부터 나온단 말입니까?

 

베이컨: 그게 어디서 나오는지 누가 알겠습니까?[각주:2]     

 

 

 

5.(3.2) 두 번째 점에 관해서는, 만일 침묵하는 것이나 말하는 것이 똑같이 인간의 능력안에 있다면, 인간사는 훨씬 더 만족스럽게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경험은 혀를 억제하는 것이나 욕망을 제어하는 것 만큼 인간의 능력 범위를 벗어나는 것도 없다는 것을 풍부한 사례로써 가르쳐 준다. 

그 결과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가 미지근하게 욕구하는 것들만을 자유롭게 행한다고 믿고 있다. 왜냐하면 그러한 것들에 대한 충동은 우리의 마음에 자주 떠오르는 다른 것의 기억에 의하여 쉽게 약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다른 것의 기억에 의하여 억제될 수 없는 강력한 감정을 가지고 욕구하는 것들을 우리가 자유롭게 행한다고는 믿지 않는다. 그러나 진실로 만일 그들이 나중에 후회하게 되는 많은 일을 저지르며, 또한 반대되는 감정에 사로잡혀 있을 때는 자주 더 좋은 것을 보면서도 더 나쁜 것을 따른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지 못했다면, 그들은 인간이 모든 것을 자유롭게 행한다고 주저 없이 믿었을 것이다. 따라서 젖먹이는 자유로이 젖을 원한다고 믿고, 성난 아이는 자유로이 복수를 바란다고 믿고, 겁쟁이는 자유로이 도망친다고 믿는다. 또 주정뱅이는 나중에 술이 깼을 때 잠자코 있지 않은 것을 후회하게 될 말들을 지껄인 것이 정신의 자유로운 결의에 따른 것이라고 믿는다. 미치광이, 수다쟁이, 어린아이, 그리고 이런 종류의 많은 사람들도 역시 실제로는 말하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면서도 정신의 자유로운 결의에 의하여 이야기 한다고 믿고 있다.

따라서 경험 자체도 이성에 못지 않게 명백히, 인간은 자신의 행동들을 의식하고는 있지만, 자신을 결정한 원인들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자기를 자유롭다고 믿고 있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경험은 또 정신의 결의란 충동 자체에 지나지 않으며, 따라서 정신의 결의는 신체의 상태가 변화함에 따라서 달라진다는 것도 가르쳐 준다. 왜냐하면 각각의 인간은 자신의 감정에 근거하여 모든 것을 결정하며, 반대되는 감정에 의하여 분열된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 못하고, 또 어떠한 감정에도 빠져 있지 않은 사람이 사소한 자극에 의해서도 이리저리 쏠리기 때문이다.

 

T1000.0 : 자유에 대해 알되 잘못 알고 있는 무명은 자신을 결정한 원인들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자기를 자유롭다고 믿고 있다는 것. 따라서 무명이 사라진 참 자유는 결정한 원인들에 대해 모르므로 한 마음 일어난 그 결과를 제1원인으로 삼지 않고 일어난 마음을, 그 결과를 인연의 총상으로 지켜보며 현재의 시공간의 인연을 따라 조화와 인과를 판단해, 즉 너도 좋고 나도 좋고 지금도 좋고 나중도 좋을 행동을 실행하는 것이 스스로가 제1원인이 되는 진정한 자유다.   

 

6. 이 모든 것이 명백하게 밝혀주는 것은 이러하다. 즉 정신의 결의 및 충동과 신체의 결정은 본성상 동시에 존재하며, 혹은 오히려 하나이고 동일한 것인데, 이 동일한 것이 사유의 속성 아래에서 고찰되고 사유의 속성을 통하여 설명될 때 우리는 그것을 결의라고 부르고, 연장의 속성 아래에서 고찰되고, 운동과 정지의 법칙으로부터 도출될 때 그것을 결정이라고 부른다. 이 점은 이제부터 논술하는 것에 의해 한층 더 명백해질 것이다.

 

6.1 왜냐하면 내가 여기에서 특별히 주의하고 싶은 다른 것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억력이 작동하지 않으면 그 어떤 것도 정신의 결의에 의하여 행할 수 없다. 예컨대, 우리는 마음에 떠오르지 않는 어떤 단어를 말할 수는 없다. 그리고 어떤 일을 기억하거나 망각하는 것은 정신의 자유로운 능력 범위를 벗어난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우리가 기억하는 것에 대하여 정신의 결의에 의해서만 침묵하거나 이야기할 수 있는 일만은 정신의 능력 안에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무엇인가 지껄이는 꿈을 꿀 때, 우리는 정신의 자유로운 결의에 의하여 지껄인다고 믿지만 기실 지껄이고 있지 않거나, 또는 설령 지껄이고 있더라도, 그것은 신체의 자발적인 운동으로 인한 것이다. 또, 우리는 어떤 일을 남들에게 비밀로 하는 꿈을 꾼다. 더군다나 깨어 있는 동안에 우리가 알고 있는 일들에 관하여 침묵하는 것과 같은 정신의 결의에 의하여 그렇게 하고 있다고 꿈 속에서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깨어 있는 동안에는 감히 하지 않는 일을 정신의 결의에 의하여 꿈을 꾼다. 여기에서 나는 정신 안에 두 종류의 결의, 즉 공상적인 결의와 자유로운 결의가 있는지 어떤지를 꼭 알고 싶다. 우리가 제정신을 잃고 헤매기를 바라지 않는다면, 우리가 자유로운 것으로 믿고 있는 정신의 결의는 표상 자체 또는 기억과 구별되지 않으며, 그것은 관념이 관념인 한에 있어서 필연적으로 포함하는 긍정(제2부 정리 49참조)일 뿐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고로 정신의 이러한 결의는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사물의 관념과 동일한 필연성에 의하여 정신 안에 생긴다. 따라서 정신의 자유로운 결의에 의하여 이야기하거나 침묵하거나 이것저것을 행한다고 믿는 사람은 눈을 뜨고 꿈을 꾸는 것이다. 

  

T1000.0 : 눈을 뜨고 꿈을 꾸는 이는 마음에 일어난 표상되로 행동하는 것을 자유롭다고 알고 있다.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을 자유라고 알고 있는데 이는 꿈 속에서 꿈 속의 내가 자유롭게 행동한다고 여기는 것과 같다. 바로 전도몽상.  
T2020. 자유로운 결의, 즉 자유의지로 말하고 침묵한다고 믿는 것은, 또는 생각하는 것은 눈을 뜨고 꿈을 꾸는 것'이다.'[은유가 아니다] 이점이 시사하는 바는 매우 중요한데, 눈을 뜨고 꿈을 꾸는 사람의 말을, 즉 자유의지대로 말하고 있다고 믿는, 또는 생각하는 사람을 보고 있을때 그가 어떤어떤 인연을 통해 그렇게 말하고 있음을 알아차려야 한다는 점이다. 만일 그 믿음이 문제가 되어 스스로 괴롭다면 꿈을 꾸고 있음을 말해 줌으로서 괴로움을 말끔히 씻을 수 있다. 이로서 상대가 타당한 근거로 말을 하는지, 아니면 나의 의지라는 환상에 근거해 말을 하는지 구분함으로서 불필요한 다툼을 피할 수 있다.

 

 T.

정리하면, 정신은 신체를 결정하지 못하는데, 자기가 하고싶은 대로 지껄인다고 생각하는 것은 꿈에서나 가능한 일이므로 이러한 일을 현실에서 의심없이 믿고 있는 것은 두 눈 뜨고 꿈을 꾸는 것과 꼭 같다.

정신이 신체를 결정하지 못하고 동시에 신체 역시 정신을 결정하지 못하면서 정신과 신체가 하나인 점. 하나의 실체의 상이한 속성으로 표현된 양태이기에 그러하며, 내재적 사유와 전도몽상된 의식을 구분하고 무지의 구간이 어느 지점인지 탐구하여 무지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 이것이 숙제다.

  1. 여기 주석은 인용자가 원문에 내용별로 번호를 붙임. [본문으로]
  2. <화가의 잔인한 손>, p107 [본문으로]

'두 눈 뜨고 꾸는 꿈'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환상처럼 보기  (0) 2019.12.07
원인과 결과의 전도몽상  (0) 2019.11.28
전도몽상의 깨달음: 원효의 일체유심조.  (0) 2019.11.27
원리전도몽상  (0) 2012.07.16
전도몽상  (0) 2012.05.24
댓글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   2025/0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