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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환각에 빠졌거나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사람과 그런 정신세계에 살지 않는 다른 사람을 구분하기 위한 언어를 찾는 게 필요할 것 같은데요. 인식론적 입장에서 볼 때 현실에 대한 적응의 정도가 진단을 위한 범주가 될 수 없다는 당신의 견해에 동감한다고 하더라도 엄연히 존재하는 그런 다름이 표현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또 한 번 짧은 이야기로 답해 보겠습니다. 오래 전에 정신연구소가 샌프란시스코에서 대규모 학술대회를 주최하는데 그 대회의 표어는 '세계 지도들 그리고 정신의 지도들'이였습니다. 이 제목은 알프레드 코르칩스키의 유명한 명제를 본뜬 것이었습니다. 그는 '일반 의미론'의 창시자인데 <과학 & 정신의 온전함>이라는 자신의 두꺼운 책에서 'The map is not the territory.'라고 써는데 지도는 땅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 진술은 다른 뜻도 있지만 정신분열증을 확정짓는 하나의 범주입니다. 그에 따르면 정신분열증 환자는 이름과 물건(이름이 지칭하는 물건), 상징과 대상(상징이 사용된 대상)을 혼동합니다. 그런 사람은 야채수프를 적어 놓은 메뉴판을 먹기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그게 스프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 학술대회에서 강연을 할 때 저는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신사숙녀 여러분, 지도가 땅입니다. 우리는 지도를 갖고 있을 뿐 다른 어떤 것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안과 밖을 분명히 (분명한 듯이) 구분하는 그 순간 우리는 이미 헤매고 있는 겁니다. 우리는 우리가 보는 것만을 봅니다."  

 

그렇지만 당신은 사람들이 정신분열증환자라고 부르는 그런 사람들에 대해서 어떻게 말하겠습니까? 메뉴판에 있는 스프와 스프 자체 간에는 구분이 명백히 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그건 분명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게 지도와 땅 간의 암묵적으로 실재론적인 그러한 구분이 유지되고 주장되어야 함을 말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지도의 지도는 땅의 지도가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군요. 이런 표현을 통해서 (땅과 지도간의) 차이의 근간을 이루는, 독립적이라고 말해지는, 외부나 실재를 지시하지 않고서도 두 개의 표상체계를 구분 지을 가능성이 마련된다고 여겨집니다. 두 개의 지도(지도의 지도와 땅의 지도)는 다릅니다. 그렇지만 그 다름은 지도와 땅의 다름과는 다름니다.   

 

그렇게 보면 정신적인 건강함이라는 말도 변형되는군요. 이제 정신분열증을 보이는 사람이 과도하게 상상된 현실에서 벗어나느냐 그렇지 못하냐라는 질문 대신에 그 사람의 현실표상이 다른 사람들의 현실표상에 비해 고통이 심하고 불쾌한지 아니면 편안한지를 묻는 질문을 던져야 하는 군요.

 

맞습니다. 메뉴판이 야채스프에 비해서 그렇게 맛이 있지 않다는 점에 우리 모두의 의견이 일치할 수는 있을 겁니다. 메뉴판이라는 지도[표상]는 맛 볼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반면 야채스프라는 지도[표상]는 그냥 그대로 즐길만한 것이지요.정신분열을 특징짓기 위해서 사용되는 분별들은 이런 식으로 전혀 다른 차원으로 옮겨갑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는 맞고 틀린 그런 식의 두 가지 표상을 구분하는 것이 아니고 모두 우리 머릿속에 있는 두 가지 표상을 구분합니다. (발명품 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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