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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유심조. 모든 게 마음이 짓는 것이다. 그런데 마음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업식, 구조적 결정론.

1

독자들은 마치 '사실'이나 물체가 저기 바깥에 있어서 그것을 그냥 가져다 머리에 넣으면 되는 것처럼 인식현상을 보아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늘 새겨야 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말하려는 모든 것의 근본이다.
어떤 물체가 '저기 바깥에'있다는 경험은 인간의 구조에 의해 특수한 방식으로 형성된다. 이런 뜻에서 인간의 구조는 기술(서술Beschreibung)활동을 통해서 생겨나는 '물체'의 가능조건이다.

[저는 오히려 거꾸로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에게 붉은 것으로 나타나는 어떤 대상이 있다고요. 그러면 이러한 색에 대한 인상은 어떻게 설명되어야 하는가라는 문제가 제기 되지요. 어떤 가정이 여기서 발견됩니까? 빨갛게 칠해진 대상이 바깥 세상에 존재한다고, 그리고 저의 지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다름 아니라 붉게 칠해졌다는 사실이라고 저에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저는 거꾸로 물어 봅니다. 우리는 그 객체가 빨갛다는 것을 어떻게 아냐고요. 그러면 사람들은 대답합니다. "글쎄, 명백하잖아요? 우리가 보잖아요?"라고. 이게 뭐를 의미하냐 하면요, 사람들은 자기가 보는 것으로부터 밖에 있어야 하는 것을 추론해냅니다. (실재표상이란) 그야말로 사유에 의해 만들어진 형상인 것이지요. (발명품 29)]

2.

이러한 순환성, 행위와 경험의 뒤얽힘, 한편으로 우리의 존재방식과 다른 한편으로 세계가 우리에게 나타나는 방식 사이의 불가분한 관계, 이것들은 다시 말해 인식활동이 세계를 산출함을 뜻한다. 인식의 이런 속성이야말로 우리의 문제이자 출발점이며 탐구의 길잡이이다. 이 모든 것을 다음의 경구로 간추릴 수 있겠다. 함이 곧 앎이며 앎이 곧 함이다.

[그러면 지각의 과정은 어떻게 서술되고, 인식은 무엇인가요?

인식은 신경체계 안에서 다양한 느낌들 간의 결합이 생겨남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자면, 여기 뭔가가 있어서 여기저기 뛰어 다니고 발이 여섯 개이며 날개도 갖고 있으며 또 웅웅거리는 소음을 만들어 냅니다. 사람을 쏘기도 하고 그래서 통증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이걸 뭐라고 부를까요?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을 인식한다는 것은 위와 같은 여러 가지 다양한 느낌, 지각들의 상호작용의 결과물입니다. 우리는 쏘였을 때의 통증, 눈으로 본 느낌, 들리는 소리 등을 연관 지어서 다른 사람에게 말벌에 쏘였다고 얘기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자기도 사회생활을 하고 있고 쏘여서 아팠던 경험이 한번쯤은 있어서, 비록 자신은 여태껏 그냥 벌에게 쏘인 적 밖에는 없지만 말벌에 쏘였다는 말을 듣고 뭔가를 떠 올릴 수 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실재표상이 생겨나고 그래서 우리는 외부에 실재하는 뭔가에 대해 얘기를 주고받는 것입니다. (발명품 22)]

3.

독자들은 행위와 경험의 연관관계에 관한 우리의 이야기를 그저 환경에만, 다시 말해 물리적 세계에만 해당하는 것으로 이해하지 말기 바란다. 인간 행위의 이런 특징은 우리 삶의 모든 차원에 해당하는 것이다. 특히 우리가, 다시 말해 독자들과 지은이들이 지금 여기서 하고 있는 일에도 해당한다.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우리는 언어 안에 있다. 언어 안에서 특별한 형태의 이야기인 가상의 대화를 나누며 움직이고 있다. 모든 성찰은, 따라서 인식의 기초에 관한 성찰도 언제나 언어 안에서 일어난다. 언어는 인간 존재와 행위의 특수한 형태다. 때문에 언어는 우리의 출발점이자 인식 도구이자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가 지금 여기서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도 행위와 경험의 순환성이 적용된다는 사실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독자들은 이것의 중요성과 근본적인 의미를 차차 깨닫게 될 것이다. 우선은 이 점을 잊지 않도록 다시 경구로 간추리고자 한다. 책 전체에 걸쳐 이 경구를 늘 마음속에 새겨두길 바란다. 말한 것은 모두 어느 누가 말한 것이다. 왜냐하면 한 세계를 산출하는 성찰 자체는 언제나 어느 한 개인이 어느 한 장소에서 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앎의 나무 3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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