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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적 운동이 하나의 지층에서 다른 지층으로 변환되는 것이라면, 절대적 운동은 절대적 탈지층화 운동이고, 탈형식화하는 추상기계, 변이의 추상기계가 지층화되지 않은 상태에 도달하는 운동이며, 어던 것도 될 수 있지만 아직 아무것도 아닌 상태(空!)에 도달하는 운동입니다. '일관성의 구도'가 바로 그것입니다. 추상기계가 변이의 선을 절대적인 지점으로 밀고나가 일관성의 구도에 도달하는 것, 그것이 바로 절대적 운동이고, "절대적 탈영토화, 절대적 탈주선"입니다.

탈코드화든 탈영토화든, 상대적 수준의 운동이나 변화는 재코드화와 재영토화로 이어지며, 하나의 지층에서 다른 하나의 지층으로, 하나의 형상(형식)에서 다른 하나의 형상(형식)으로 옮겨가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모든 것이 끊임없이 생성, 변화하는 것, 모든 것이 무상(無常)하다고 보는 하나의 방식입니다. 그러나 이는 다만 상대적인 수준에서, 다시 말해 멈추고 고정되는 한에서만 생성, 변화를, 무상을 보는 방식입니다.

이와 달리 앞서 두 가지 추상기계를 구별하면서 말했듯이, 모든 형식화된 것에서 탈형식화된 절대적 흐름 그 자체로 나아가는 것, 형상을 갖는 모든 것에서 어떠한 형상도 갖지 않는 절대적 흐름 그자체를 보는 것, 바로 이것이 절대적 수준에서 생성, 변화를 보는 것이고, 절대적 수준에서 무상 자체를 보는 것입니다. '모든 상(相) 있는 것에서 상 없는 것을 본다면 여래를 보리라(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라는 <금강경>의 유명한 문장은 이처럼 절대적 수준에서 무상을 보는 것, 절대적 운동을 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모든 지층적 형식에서 탈지층화하는 운동을 통해 공(空)이라고 불리는 디그리 제로(degree=0)인 상태에 도달하는 것, 혹은 모든 지층에 내재하는 공성(空性)을 보는 것 말입니다.[각주:1]

 

T1000.0 : 내 보기에, 숭산스님의 가르침인 '모른다'의 마음은 절대적 탈지층화의 흐름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모른다'는 일관성의 구도로 가는 다이어그램[불교용어로 말하면 '방편'], 즉 추상기계이며 기관 없는 신체에 도달하는 마음이다. 우리의 사유가 '모른다'를 통해 무상(無常)한 흐름대로 변용된다면, 삶은 모양에 집착하지 않는 물처럼 어디에도 걸리지 않는 자유가 된다.  

 

 

 

  1. <노마디즘1> p221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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