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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와 법은 관계속에서만 아 또는 법으로 제 모습을 나투고 있으며, 관계의 장이 아닌 곳에서는 아와 법을 세울 수 없습니다. 관계의 장을 떠난 아와 법은 단지 습관적인 인식의 결과이면서 동시에 우리를 그와 같이 인식하게 하는 원인, 곧 습관적인 인식을 낳게 하는 인식의 종자에 의한 것입니다. 관계, 곧 연기를 떠난 곳에서의 아와 법이란 실재하지 않은 것이며, 관계의 장에서의 아와 법은 이름과 같이 나뉠 수 있는 것 또한 아닙니다.
2.
나뉠 수 없는 관계, 곧 연기가 나뉨으로 인해 아와 법이 제 성품을 잃고 서로가 소외되어 있는 인식의 장면들은 참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거짓으로 밖에 이야기할 수 없으며, '나'와 대상이 서로 나뉘어 소외되면서 스스로를 얽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눈만 뜨면, 생각만 열리면, 심지어 생각이 열리지 않을 때에도 주관과 객관의 고정화로 인한 갈등과 불만족은 계속됩니다.
3.
눈을 뜨고 있을 때나 눈을 감고 있을 때나 잠을 잘 때조차도, 주관과 객관을 이원화시켜서 삶의 청정성을 왜곡시키는 힘이 작용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을 총체적인 인식의 장으로 보지 못하고, 분별된 상태로 밖에 알지 못하면서 분별될 것을 집착케 하는 깨어 있지 못한 무명의 작용 때문입니다.
4.
우리의 생각[意]은 항상 근원적인 분별[無明]을 그 바탕으로 하여 나와 너를 분리시켜서 '나다, 너다' 하며 현실의 삶에 대한 분별을 계속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너는 나, 너는 너'라고 하는 벽을 더욱 두텁게 쌓고 살게 됩니다. 이 벽으로 인해 지금 여기의 우리 삶을 제대로 보지 못하며 근원적인 분별은 더욱 굳건해집니다. 이러한 분별에 의해서 파악되는 아와 법은 그 근거가 없는 유위의 분별로서 연기실상의 흐름인 앎과는 다릅니다.
5.
우리의 삶은 연기실상인 총체적인 앎[주관과 객관이 하나가 된 場]에 의해 유지되면서 흘러갑니다. 제 8식의 식장은 '삶의 바탕인 동시에 삶을 유지하는 힘'으로서 만남의 관계 속에서 매순간 변하는 흐름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삶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삶의 어느 한 부분을 떼어내어 '나는 나, 너는 너'로 고정화시킵니다. 순간순간의 흐름에 명철히 깨어 있지 못한 무명, 곧 근원적인 분별에 의한 것입니다.
(유식 30송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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