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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파인만 씨, 농담도 잘하시네 1>에는 파인만 씨가 대학시절 '우리가 잠들 때 의식의 흐름이 어떻게 끝나는가?'을 관찰했던 이야기가 나온다. 꿈을 꾸면서 꿈을 관찰하는 이 이야기는 꿈 속에서도 깨어있는, 즉 꿈을 꾸면서도 꿈을 꾸고 있음을 알아차린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웠다. 그리고 파인만 씨가 관찰을 통해 얻은 결론은 나에게 '현재에 깨어있는'것에 대한 깨우침을 주었다.

 

나는 이 관찰의 결과로 작은 이론을 만들었다. 내가 꿈을 관찰한 이유 중 하나는 사람이 어떻게 사물에 관한 이미지를 보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눈을 감고 있다면 시신경에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는다. 그런데 꿈속에 이미지가 보이는 이유는 무작위적으로 생기는 신경 자극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무작위적인 자극이 깨어 있을 때 무언가를 보는 것과 똑같은 정교한 모습을 구성한다고는 상상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잠을 잘 때 어떻게 색깔을 보고 물건을 자세히 <볼> 수 있는가?

나는 뇌 속에 <해석 부분>이 있다고 판단했다. 우리가 사람, 등불, 벽 등 무엇인가를 볼 때 눈에 보이는 것은 단순히 색깔로 얼룩진 반점일 뿐이다. 그것을 이미지로 이해하려면 어떤 장치가 있어서 그것을 해석해야 한다. 우리가 꿈을 꿀 때는 이 부분이 계속 작동하고 있지만, 조금 뒤죽박죽되어 버린다. 이 부분은 우리가 아무것도 보지 않을 때도 사람의 머리카락을 정밀하게 보고 있다고 느끼게 하는 것이다. 이 부분은 무작위적인 신경 자극을 명확한 이미지로 해석해서 뇌로 보내는 것이다.

 

<파인만 씨, 농담도 잘하시네 1> p65   

 

2.

생각을 관찰할수도 있습니까?

여기서 다시 한 번 강조해야 할 것은 내가 있어서 생각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 '생각의 흐름[앎] 속에 나와 대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생각[앎]이 이어져 가면서 순간순간 자신과 대상의 전체가 변하면서 흐릅니다. 이것이 앎의 흐름이며, 우리의 삶은 매순간 앎 밖에 없습니다. '생각이 바로 앎'으로서 무엇이 생각을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알고 관찰되는 흐름'이 있습니다.

 

<생활속의 유식 30송> p160

 

3.

볼때는 봄만이 있다.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가 빨간 장미를 본다는 것은 장미가 빨게서 그런 것이 아니다. 빨간 색을 본다는 것은 연기적 관계속에서 이뤄지는 일체의 현상으로, 말하자면 장미꽃은 빛을 빨간색만 반사하고 나머지 색은 흡수하므로써 우리 시신경에 자극을 준다. 이 자극은 '단순히 얼룩진 반점일 뿐'인데, 뇌에서는 이 상을 빨간 장미란 이미지로 해석한다. 따라서 붉은 장미를 본다는 것은 현재에만 가능한 사건으로 빛, 굴절각, 공기, 온도, 장미, 관찰자 등등등 무수한 요소들이, 즉 전체가 하나로 연결되었을 때만이 가능한 것이다. 이렇게 전체가 하나일 때 우리는 본다는 '봄'이 이뤄진다. 하여 볼때는 봄만이 있다. 전체로서의 봄만이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봄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파인만씨 농담도 잘하시네 1>의 위의 구절을 다시 읽으면서 꿈에서 본다는 것과 현재에서 본다는 것의 차이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꿈에서 본다는 것은 현재에 이뤄지지 않는 사건을 꿈 속에서 본다는 것이다. 꿈 속에서 봄은 전체가 하나되는 현재의 봄이 아닌 눈감은 소외된 봄의 기억 또는 기억의 상을 통해 보는 뇌의 작용으로 현재와는 완전 다른 것이다.

현재를 산다는 것, 현재에 깨어있다는 것은 순간순간이 전체, 우주 전체와의 합일된 사건임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현재를 산다는 것은 이미 우주 전체로 사는 지금 이 순간을 깨어 알아차리는 것이며 반면 생각, 꿈, 환상 같은 현재로부터 소외된 기억에 의존해 그것에 대한 집착과 그로인한 괴로움에 시달리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4.

꿈에서의 봄과 현재의 봄의 차이를 사유하면서 현재가, 지금 내가 보는 것이 우주 전체가 하나된 흐름 속에서의 앎이라는 것을 새삼 깨우치게 되는 순간 그간 내가 힘써 노력하던 항상 깨어있기가 눈녹듯 가볍게 되는 경험을 하고 놀랐다. 

달리 애쓸 필요없이 그저 보는 것만으로 현재에 깨어있게 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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