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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삶의 모습은 단지 연기관계에서 생성과 소멸일 뿐입니다. 연기 관계에서 조건의 결합에 따라 생성과 소멸의 모습만 있는 것이 지금 여기의 우리이며 이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따라서 삶과 죽음에 대해서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등으로 집착하 까닭이 전혀 없습니다.
행의 집착에 따라서 생사가 불만족스러울 뿐입니다. 불만족스러운 생사의 모습은 생사의 본 못브이 아니라 집착하는 작용인 행의 마음 작용에 의해서 잘못 인식된 결과입니다. 그래서 앞서 괴로움의 발생이 생사에 있지 않고 생사를 색칠하는 업의 활동인 중생의 마음에 있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생사가 불만족으로 다가올 때는 우리들의 진실한 삶의 모습을 보는 것이 아니라 집착하는 자신의 마음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변계소집성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 것이며 이때는 생사가 생과 사로 별개의 모습을 갖게 됩니다. 생과 사로 나누어 생을 탐하거나 싫어하며 사를 탐하거나 싫어하게 되는데, 이것은 생사의 진실한 모습을 알지 못한 어리석은 마음 작용입니다. (법성게 169)
T.
불교는 연기를 추상한다. 반면 현실의 죽음은 생생하다. 이 간극이 불교를 어렵고 피상적으로 느끼게 하는 게 아닌가. 그렇지만 나의 괴로움이 생사에 있지 않고 생사에 집착하는 마음에 있음은 자신을 돌아봄으로써 비교적 이해가 어렵지 않다. 허나 생사와 생사에 대한 집착을 구분하는 건 글자로는 손쉬울 수 있으나 실전에서는 만만치 않다. 다만 알아차린다. 연습하고 연습한다. 불교적으로 사유하는 사고습관을 통해 평소 생활화되도록 수행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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