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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닙니다. 아마도 사람들의 수용 여부는 그들 자신의 가치들과 준거들의 영향을 받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이러한 경우에,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리고 무엇이 보이고 있는지 간단히 지각하는 것은 분명 어렵습니다. (335)
블레이은베르흐의 예를 다시 취하면서, 그는 다음과 같이 답한다: <나무의 열매에 대한 금지의 요체는 단지 그 열매의 섭취가 가져오게 될 치명적인 귀결에 대한, 신이 아담에게 준 계시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자연의 빛에 의해 독이 죽음을 낳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편지19). 다시 말하면 신은 아무것도 금지하지 않는다. 다만 신은, 그 열매는, 그 구성 때문에 아담의 신체를 해체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아담에게 인식시킨다. 열매는 비소처럼 작용한다. 따라서 우리는 출발점에서 스피노자의 핵심적인 논제를 발견하게 된다. 나쁜 것은 중독, 소화불량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논제가 그것이다. 심지어 그것은, 개별적 요소들을 고려한다면 배척이나 알레르기로 이해될 수도 있다. 블레이은베르흐는 이것을 아주 잘 이해하고 있었다. <내가 악덕이라고 부르는 것을 당신이 삼가는 것은, 그것이 악덕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당신의 단일한 본성에 어긋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어떤 음식물을 자신의 본성이 그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삼가는 것처럼, 당신은 악덕을 삼갑니다.>
(스피노자의 철학 p51)
4.
만일 내가 가치평가와 서술 사이의 구분을 분명하게 유지하고자 원한다면, 내가 해야 하는 것이란 가능한 한 분명하고 정확하게 주장하는 것이고 내가 의미하는 것을, 그리고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꼼꼼하게 진술하는 것입니다. 물론 내가 정당한 상대방으로서의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어떤 행위를 관찰할 때마다, 나는 넘(Num) - 새롭고 부담 없는 언어 - 을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 사람들은 아마도 나에게 내가 왜 그러한 표현을 사용하고 있었는지 물어볼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단어와 같이, 이러한 종류의 행위에 대해, 그리고 관계들의 흐름 속에서의 이러한 자취에 대해 사용할 수 있는 공통의 개념이 있으니까 말입니다. 나는 다시 한 번 반복하고 싶습니다. 나는 무엇이건 사랑을 장려할 의향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정말로, 사랑이 없다면 사회현상들은 있을 수 없다고 강력히 주장하는 바입니다. (함으로 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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